[인터뷰]느리게, 곱씹으며 완성되는 콘텐츠 | 인터뷰: 느린양반

유튜버 느린양반. 그리고 인간 장성익


© 논라벨 매거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쇼츠, 릴스는 물론이고 모든 콘텐츠가 초반에 이목을 끌지 못하면 외면받기 쉽죠. 3~4분 대가 일반적이었던 음악의 길이도 2분 대로 짧아진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길수록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긴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크리에이터가 있어요. 브이로그를 베이스로 넓은 의미의 '패션'을 담아내는 유튜브 채널, '느린양반'입니다. 느린양반 채널의 제작・편집・연출 및 출연까지 하고 있는 장성익 님은 자신의 채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것을 점점 끊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만, 예전에 좋아했던 패션이나 브랜드, 옷에 대한 열정에 다시 한번 불 지피는 정신 못 차리는 나이 든 아재의 모습"이라고요. 유행하는 아이템을 좇는,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넓고 깊은 의미의 '패션'을 천천히 바라보는 채널, '느린양반' 장성익 님과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Chapter 1. 유튜버 느린양반


© 논라벨 매거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보니 유튜브 채널 소개란이 굉장히 담백하더라고요. '한국중년남자'. 어떤 의미인가요?


제 채널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히 정해져있지 않고, 제가 특출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쓸 말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 채널이 '패션 유튜브'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거든요. 첫 영상이 패션 관련 콘텐츠도 아니었고, 제 나이가 중년은 되었고, 한국에 살고 있다 보니 그렇게 표현했어요.


남자패션유튜버로 나만의 색감을 찾기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 느린양반 유튜브 캡처


캐주얼한 스타일이 많이 보이는 지금과는 다르게, 초기엔 양복과 관련한 콘텐츠들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지만, 유튜브를 시작할 당시에는 제가 '느린 양복'이라는 테일러 숍을 하고 있었어요. 유튜브를 통해 양복 쪽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콘텐츠를 만들었고, 패션이 더해진 브이로그 형태의 영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브이로그를 베이스로 패션이 섞인 콘텐츠를 만들고 계신 거죠?


그랬었는데, 최근엔 점점 방향을 틀고 있어요. 영상에 제가 나오는 것보다는 패션 쪽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고,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생각들을 담으려고 하고 있어요.


한국 스트릿패션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도메스틱브랜드 휴먼트리]

© 느린양반 유튜브 캡처


말씀하셨던 것처럼, 양반님 채널엔 꽤 많은 패션 업계 종사자분들이 출연하셨어요. 제일 처음 함께한 분은 누구였나요?


제 영상에 알려진 분이 나온 건 제이야스(Jayass)님이 처음이었어요. 그분이 인스타그램에 빈티지 의자를 팔고 계셔서 제가 구매하겠다고, 일산까지 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예전에 그분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의자를 가지러 간 김에 구입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도 되겠냐고 여쭤봤어요. 돌아온 대답은 "Why not?". 그래서 찍은 거죠. 그걸 편집해서 올리고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그 후로는 브랜드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업계 분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제 영상에 나온 분들이 대부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에요. 그래서 그분들도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목적이 있겠다" 이런 게 보일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만나요. 다 그런 식으로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도 "아 저 양반은 정말 영상을 좋아해서 저렇게 찍나 보다"라고 편하게 생각해 주시고, 계속해서 찍을 수 있었던 거죠.


왜 청바지는 정답이 없고 자기것을 만들어가야 되는가?

© 느린양반 유튜브 캡처

개인적으로 데님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워진 두 시간 반짜리 영상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일반 소비자들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나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 두 시간 반짜리 영상을 완성하는 데 한 달 반이 걸렸어요. 편집 과정에서 노트북 발열이 너무 심해서 10분 동안 자막을 달고, 노트북을 냉장고에 넣어 열을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었어요. 사실 저는 편집 과정에서는 영상을 수도 없이 보지만, 완성된 영상은 다시 안 보거든요. 그런데 유독 고생을 했던 영상 두세 개는 다시 보는데, 그중 하나가 데님 영상이에요. 영상에서 제가 메인이 아니라 출연하신 분들이 주가 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던 점이에요.


사실 유튜버에게 한 달 반 동안 영상 하나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거든요. 유튜브라는 시장 자체가 계속해서 빠르게 영상을 쪼개고, 나눠서 올리면서 알고리즘을 타고 노출되기도 하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시청자 유입을 만드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서 쉽지는 않았는데, 저는 긴 호흡의 영상을 만드는 게 제 성향에 더 맞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게 좋으면서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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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양반님 채널에는 쇼츠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게 긴 영상을 선호하는 성향과 연관이 되나 싶었어요.


네 맞아요. 일단 제가 천천히 곱씹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느린 편이기도 해요. 그래서 뭔가를 만들 때에도 천천히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실 저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영상을 볼 때 배속으로 본다는 것 자체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어떤 영상을 보여주는데, 재생이 되게 빨리 되는 거예요. 이게 뭔가 했는데 "요즘엔 다 이렇게 봐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저도 배속으로 영상을 몇 개 봤더니, 점점 익숙해졌어요.


양반님 콘텐츠에는 패션에 있어서도, 영상을 제작하거나 채널을 운영하는 애티튜드에 있어서도 곱씹을만한 내용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쇼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접하게 되면 이 채널의 팬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딱히 쇼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시대의 흐름이라든지, 사람들의 니즈는 알고 있지만 그걸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장 구독자를 많이 늘리고, 시청자를 신경 써서 유튜브를 키워야겠다는 건 애당초 포기했거든요. 사실 제가 성공을 못할만한 성향인 거죠.


오히려 지금 봐주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 이 양반 또 이런 거 하네", "이 양반 아직도 이러고 있네"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마저도 다른 사람의 영상을 배속으로 시청하고 재미없는 부분은 스킵을 하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빠른 것이라고 해서 쇼츠 같은 걸 생산하고 싶지는 않아요.


셔츠속에 숨겨진 디자인과 봉제. 그리고 도메스틱 브랜드 델디오

© 느린양반 유튜브 캡처


패션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해오셨어요. 첫 협업은 어떤 브랜드였나요?


첫 협업은 델디오(DELDIO)였던 것 같아요. 델디오의 셔츠를 만드는 곳이 제가 테일러 숍을 하던 당시 셔츠 작업을 맡기던 공장이었거든요. 그걸 계기로 같이 콘텐츠 하나 해보실 생각이 있냐고 여쭤봤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아마 처음으로 유튜브 협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옷을 냈던 것 같네요.


최근 스펙테이터와 협업한 재킷을 착용한 모습
© 논라벨 매거진


최근엔 스펙테이터와 협업해 MA-1도 제작・판매하셨어요. 제작을 위해 수차례 서울을 다녀가시고, 그 과정을 콘텐츠로 담아내셨죠. 지금까지 판매하신 굿즈 중에 가장 고가여서 그런지 가격을 공개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어요. 반면 판매는 성공적이었고요. 제작부터 판매가 완료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옷은 앞으로도 없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아닐지라도 제 채널을 봐주시는 분들도 전부 만족시킬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고요.


옷 하나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설득을 시켜야 되는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고, 그 부분에서 속상한 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작 과정들을 콘텐츠로 담아서 보여드렸는데도 오해가 생겨 답답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죠. 옷이라는 게 영상으로만 보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와닿지 않는 부분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했고요. 결국에는 완판되긴 했어요. 구매해 가신 분들 중에서 실망한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일단은 반품도 없었고요. 지금까지 봤을 땐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브랜드와 협업한 굿즈를 발매하실 예정인가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유튜브만으로는 유지가 쉽지 않으니까요. 영상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그건 당장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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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님 스스로가 생각하는 '느린양반'채널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누구나 다 갖고 있을 법한 생각인데,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것을 점점 끊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는 예전에 좋아했던 패션이나 브랜드, 옷에 대한 열정 같은 게 남아있거든요. 제 채널의 정체성은 그런 것들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정신 못 차리는 아재의 모습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현재 채널의 모습과는 다른, '느린양반'채널의 다음 스텝이나 지향점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영상을 찍을 때에도 그렇고, 다음 스텝을 생각해서 움직이거나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결과나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정체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지금처럼 묵묵히 경계 없이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그런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Chapter 2. 느린양반 뒤에 있는, 인간 장성익


© 논라벨 매거진


패션 관련한 것들이 서울에 많이 몰려있잖아요. 지금 계시는 진주는 거리도 멀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진주에서 양반님의 취향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들이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어요. 당장 올해 다 정리하고 올라갈 수도 있는 거고요.


올라간다는 게 어떤..?


서울로요. 제가 지방에서 유튜브를 하고 있지만, 이대로는 비전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지방에서는 패션이 아니더라도 특정 취미활동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타인과 공유하며 희열을 나눌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부산이나 대구, 혹은 타 지역에서 찾아오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본인 주변에 이런 걸 좋아하는 친구가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역과 관계없이 대부분 그런 외로움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옷도 좋아하면서 대인관계가 좋은 분들이라면 다르겠지만, 특히나 저처럼 가정을 이루고 육아까지 하면서 옷을 좋아하는 분들은 더더욱 그런 것들을 해소할 데가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패션이라는 취미가 고독함을 많이 느끼는 분야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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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울 근교로 올라가시게 되면 유튜버로 계속 활동하실 계획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생각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특정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들도 계속 해나갈 생각이에요.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콘텐츠를 더 만들기 위함이니까요.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능력을 잘 쌓고, 내 본진이 잘 구축되어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의 접점이 생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내 능력은 아무것도 없고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분들께 무언가를 같이하자고 하는 건 좀 무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갖고 있는 건 제 채널이니까. 해오던 건 쭉 하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그쪽으로도 방법을 찾아볼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요. 제가 총각이었다면 실패하더라도 고충을 혼자 감당하면 되는 거니 고민이 덜할 것 같은데, 식솔이 딸린 상황에서 올라가려니 부담감이 커지는 거죠.


어릴 때부터 진주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떠난다는 결정을 하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죠. 진주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니까요. 그런데 20대 때에는 그게 너무 답답했어요. 옷을 좋아하는데 그 당시에는 제가 좋아하는 옷을 취급하는 숍도 없고, 진주에는 저와 같이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서울에 있는 숍들을 자주 놀러 다니면서 졸업 후에 꼭 서울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졸업 후에는 서울에 있는 매장이나 브랜드에 이력서를 뿌려보고, 면접도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안되겠다. 나는 촌놈인가 보다" 하면서 다시 진주로 내려온 거죠.


© 논라벨 매거진


모든 취미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패션은 가정이 생겼을 때 원하는 만큼 즐기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할 건데, 배우자가 옷을 구매하는 거에 있어서 관여를 하게 되잖아요? 지금 이 옷을 사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엔 와이프가 영상에 나와서 그런 것들을 유쾌하게 담아내려는 시도도 몇 번 했었어요. 근데 사실 그건 영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와이프가 옷에 있어서 전혀 관여하지 않아요. 어느 순간 제가 "영상의 재미나 유머 요소를 위해 와이프를 진짜 많이 이용하고 있구나. 나는 쓰레기구나.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자제하고 있어요. (웃음)


느린양반이라는 캐릭터와는 별개로, 인간 장성익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좀 전의 말과는 완전히 상반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간 장성익으로써는 당장 카메라나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와이프에게 집중하는 삶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패션과 영상 모두 환상을 품게 하는 영역이다 보니 늘 현실과 동떨어진 작업을 할 때가 많거든요. '지금 내가 이 옷을 사는 게 맞나?', '여기서 이걸 찍는 게 내 삶에 의미가 있어?'라고 반문하다 보면 느린양반이라는 사람은 어때 보일지 모르지만, 남편, 그리고 아빠로써는 그닥인 게 분명한 것 같아요. 워라밸을 맞추면 되지 않냐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전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죽어라 파는 타입이라 옷도 영상도 적당히만 하는 게 어땠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유튜버로 성장을 바라기보다는,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Editor: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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