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옷, WARDROBE41

옷장에서 오랜 기간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옷을 얼마나 자주 구매하시나요? 혹시 유행이 너무 빠르게 지나버릴까 봐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한 적은 없나요?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랜드가 무엇을 출시하고 셀러브리티들은 무엇을 입는지 알 수 있는 시대인 만큼 트렌드는 빠르게 인지되고, 소비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Y2K라는 키워드로 모든 매체가 도배되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정 반대의 무드인 올드머니를 이야기한 것처럼요. 


굵직한 트렌드를 몇 번 따라가다 보면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잘 입을 수 있는 옷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죠. 내 옷장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으면서 꾸준히 손이 가는 옷이 나에게 가장 좋은 옷일 텐데, 이 생각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워드로브 41]인데요, 편집숍의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 서로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탄생한 워드로브 41의 박정승, 배승혁 대표님과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워드로브 41 배승혁, 박정승 대표 | © 논라벨 매거진


안녕하세요.논라벨 매거진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승혁: 안녕하세요. 워드로브 41을 운영하고 있는 배승혁입니다.

정승: 안녕하세요. 워드로브 41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박정승입니다.


두 분이 같이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함께하게 되신 건가요?


승혁: 원래는 저 혼자 브랜드를 하고 있었고, 정승 씨가 다른 숍에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숍에 손님으로 갔는데 정승 씨가 있더라고요. 응대를 너무 잘해줘서 첫인상이 좋았고, 더 알아가면서 친해지고 싶었어요. 무언가를 같이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곁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가까이 지냈어요.

브랜드는 나름대로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어요. 하다 보니 조금씩 어려움을 느끼게 됐고, 나와 마음이 맞는 분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승 씨가 떠오른 거죠. 처음부터 바로 같이하자고 하지는 않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보고 싶은 건 없는지 슬쩍 떠봤어요. 그 이후로 정승 씨가 여러 일들을 하다가 텀이 좀 있었을 때, 급하게 할거 없으시면 저랑 브랜드같이 운영해 볼 해볼 생각이 있냐며 제안해서 함께 하게 됐죠.


박정승 대표 | © 논라벨 매거진


정승 대표님은 기존에 브랜드를 운영할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정승: 정확하게 의류 브랜드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해왔던 것들을 토대로 숍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에잇디비전(8DIVISION)이라는 편집숍에서 승혁 씨를 만났는데, 혼자 브랜드를 전개하는 과정을 4년 정도 지켜보다가, 하려고 하는 방향성이 보여서 같이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랜드 정체성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 같은 부분도 일치하는 것이 많았거든요. 

옷이 좋아서 만나게 됐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방향성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가 중요한데 그거에 대한 대화를 나눴을 때 교집합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라는 게 한번 시작하게 되면 잠깐 1-2년 하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을 했고, 어느덧 함께 한 지 3년 차가 되었습니다.


© 논라벨 매거진


워드로브 41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지어진 건가요?


정승: 승혁 씨가 혼자 브랜드를 운영했을 때에는 '방'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진행했었어요. 기존 브랜드와 연결이 되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고, 방과 이어질 수 있는 언어가 뭐가 있을까 하면서 의복이랑 연관되는 단어들을 생각했어요. 저희 브랜드의 방향성의 빠르게 소비되기보다는 옷장 속에서 오랜 기간 꺼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워드로브'라는 이름을 먼저 정하게 되었어요. 부드러운 이미지가 연상되는 저희 옷과 워드로브라는 단어의 어감도 잘 어울렸고요. 거기에 지금 이 건물의 위치가 41번지라서 두 가지를 결합한 '워드로브 41'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는지도 궁금해요.

© 논라벨 매거진


정승: 저는 샌프란시스코마켓이라는 편집숍에서 4년간 근무했어요. 처음엔 세일즈 스태프로 시작해서 매니저로 일을 했고, 나중에는 바잉 관련한 업무까지 했어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하나의 작은 스토어를 매니저로써 운영을 하고, 대표님과 바잉하러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마켓은 클래식을 많이 다루면서 캐주얼도 다뤘거든요. 일본, 미국, 유럽의 빈티지한 분위기의 정통성 있는 캐주얼을 많이 다루면서 습득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이후엔 편집숍 에잇디비전(8DIVISION)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제가 일할 당시에는 컨템포러리한 옷들을 베이스로 일본 브랜드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전에 일하던 곳보다는 낮은 연령층의 고객분들이 많이 찾아오셨고, 그 고객들을 응대하다 보니 젊은 사람과 나이가 있는 사람의 교집합을 많이 발견하게 됐어요. 에잇디비전에서도 바잉 관련 업무를 했고, 그 과정에서 제 취향을 더 발견할 수 있었어요. 6-7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까 "내가 유행하는 옷도 좋아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돋보일 수 있는 옷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후에는 챕터원이라는 곳에서도 잠깐 근무했어요. 챕터원은 패션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이나 그릇, 오브제 같은 것들을 메인으로 판매하는 스토어다 보니 사람들이 패션 카테고리 외에 어떤 것을 소비하는지 볼 수 있었어요. 이때  "옷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적인 것을 전달하는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게 브랜드와 연관이 되더라고요. 그 결과 일상적인 옷이지만 보다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과 같은 무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배승혁 대표 | © 논라벨 매거진


승혁: 저는 원래 미술을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오다 보니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휴학 기간 동안 커피도 배워보고 여러 경험들을 해봤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제가 손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미술도 커피도 손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생산 쪽을 경험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평소 옷을 워낙 좋아했었거든요. 옷도 좋아하고 손으로 뭔가 하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내 옷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옷은 이런 부분이 아쉬운데 이랬으면 어땠을까?' '이런 원단이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몇 피스씩 만들어보자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처음으로 제작 의뢰한 옷이 나왔을 땐 너무 기뻤어요. 이후 몇 번 더 만들다 보니 만족을 하다가도 좀 더 완성도 있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남아서 '짧게라도 공장에 들어가서 배워보자.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정확하게 배워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과정을 배우고, 이후 숍에서도 잠깐 일해보면서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꼈어요.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로 넘어오게 됐어요.


© 논라벨 매거진


매장이 위치한 안국동이 브랜드의 무드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의류 브랜드들이 많이 있는 곳이 아님에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정승: 패션 하우스 숍들이 많은 곳에 매장이 위치했다면,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옷을 사러 오는 분들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떤 동네를 갈 때 그곳을 가는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있는 안국동은 갤러리가 많고,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날을 위해서 신경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옷의 방향성과 안국동의 그 분위기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유동인구의 연령대가 너무 젊은 층보다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도 있거든요. 공예가들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저희 브랜드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위치하게 됐습니다.


워드로브 41은 현재 일부 편집숍에만 입점해있고 플랫폼에는 입점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홍보에도 크게 힘을 쏟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요.


정승: 현재 광고나 프로모션 등으로 홍보하는 수단은 없어요. 지금까지는 기존 고객님들께서 다른 분들에게 소개해 주셔서 찾아와주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리고 대형 플랫폼에는 입점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옷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들어가 보는 편집숍에는 일부 입점해있어서, 그걸 보고 찾아와주시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가 홍보를 많이 한다고 해서 옷이 많이 팔릴 수 있는 브랜드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단 지금까지는 저희가 생각하는 마케팅적인 규모와 저희의 규모가 딱 맞게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 외의 것들은 좀 더 나중에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승혁: 최근에 저희가 카페에서 팝업을 진행했는데, 새로운 공간에서 저희 제품을 선보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기존에 그 카페를 이용하던 분들도 보러 오실 수 있고요. 홍보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알릴 수 있기도 했고,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것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희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서 좀 더 노출된 곳에서 소개하는 방법들도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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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에 큰 힘을 쏟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건 소비자들이 제품에 크게 만족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승: 유명한 사람이 제품을 착용했을 때 물론 마케팅적인 효과가 있을 수는 있어요. 근데 그런 건 운이 따라야만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저희가 일시적인 것에 목매다 보면 제품에 대한 디테일이나 추구하는 가치들이 좋지 않게 변할 것 같았어요. 저희는 많은 수량을 만들지 않더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것 내에서 가격에 맞게끔 잘 만드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있어요. 그게 정수적으로는 가장 좋은 마케팅일 수 있으니까요.


제품들이 격식을 차린 것 같은데도 어떻게 보면 힘을 뺀 듯한 느낌이에요. "나 멋 부렸다"라며 강조하는 느낌도 아닌 것 같고요. 이런 브랜드를 전개하는 핵심 이미지나 키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정승: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저희는 고객들과 옷이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너무 영한 무드보다는 고급스럽고 입었을 때 사람을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옷이 좋을 것 같았고요. 때문에 너무 어린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지는 않아요. 또 하나는 1900년대 초에 있던 클래식 의류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편하고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고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우리 브랜드의 색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옷과 호환이 잘 되는 옷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옷 자체의 개성에 사람이 가려지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빛낼 수 있는 브랜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논라벨 매거진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정승: 그 과정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으니까 브랜드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어려운 경우를 찾자면 저희가 쓰고 싶은 원단의 소재들이 있는데, 그걸 국내에서 찾기 어려울 때인 것 같아요. 혹은 재료를 찾았는데 그 원단의 단가가 너무 높아서 쓰기 곤란할 때도 있고요. 제작 과정에서 높은 단가가 들어가게 되면 옷의 가격대가 올라야 하는데 그 가격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모든 물건은 재료값이 오르면 제품 값이 오르는데, 국내 시장에서는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 단가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방법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가 스페셜하지만 스탠다드한 옷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비싸게 팔고 싶지도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기준을 잡는 게 목표라서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승혁: 옷이 나왔을 때 샘플을 걸어놓고 이런 얘기도 해요. "다른 숍에 걸려있으면 너는 구매할 것 같아?" 이런 거 있잖아요. 저희 눈에는 너무 좋지만 가끔은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흐려진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먼발치에서도 한번 보고, 길거리에 다니시는 분들이 입었을 때 어울릴까?라는 상상도 해보고요. 그런 점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싶었던 게 실제로 반응이 왔을 때도 기분 좋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제품을 소비해 주시는 분들이 같은 걸 느꼈구나 라는게 느껴지니까 너무 재밌어요.


정승: 설득을 못하더라도 진심을 다해서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야 옷을 보러 오는 분들을 실제로 마주쳤을 때 옷을 권할 수 있거든요. 아니면 거짓말하는 것 밖에 안되니까요. 그래서 다른 브랜드의 옷보다 더 냉정하게 보고 더 트집 잡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야지 나중에 봐도 부끄럽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넘어가면 시즌이 지나고 나서 허점이 보일 수 있거든요. 우리 스스로를 먼저 설득해야 남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승혁: 그게 어떤 마케팅보다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이게 일 밖에 안되고, 그때부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요.


© 논라벨 매거진


마지막 질문이네요. 앞으로 워드로브 41의 지향점과 다음 스텝으로는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정승: 브랜드가 하나의 옷으로 완성도는 것이 아닌, 좀 더 다양한 구성을 하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제가 하고자 했던 목표는 편집이었거든요. 옷뿐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이 될 수도 있고요.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것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싶은 목표가 크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워드로브 41은 매년 나오는 스탠다드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그 외의 것들도 풍성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면 너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승혁: 아직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형태로 변해갈 것 같다는 확신은 있어요. 저희가 그동안 옷만 봐온 게 아니기 때문에 꼭 판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제품을 소개를 해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정승: 워드로브 41은 패션 브랜드라기보다는 하나의 어패럴이고, 어패럴 외에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저희가 구성을 해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게 국내 남성복 시장에서 많은 파이는 아닌데 충분히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세대를 나누지 않는 그런 것들을 많이 찾아서 소규모지만 알찬 숍이 되고 싶어요.



Editor: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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