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눠주는 아이스크림 아저씨: 녹기 전에

모두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논라벨 매거진


어린 시절 운동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아이스크림 아저씨. 우리의 기억속 아이스크림 아저씨는 마치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이윽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아이들은 행여나 떨어질까 아이스크림을 단단히 움켜쥔 채 저마다 한가득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돌아서곤 했습니다.


마포구 염리동 ‘녹기전에’의 박정수 대표(이하 녹싸)는 어린 시절 기억 속 아이스크림 아저씨처럼 트럭을 몰고 다니지는 않지만, 트럭만 한 크기의 가게에서 남녀노소 모두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여 드립니다. 행복도 함께 말이죠.


'녹기전에'가 다른 아이스크림 가게와 확실한 차이 점이 있다면, 녹싸님은 5평 남짓 작은 가게에서 공동체를 바라보며 재미난 일을 꾸민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가게 근처 학교의 식단표를 공유해 '식단의 플랫폼화'를 노린다거나, 때때로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거나 신을 벗은 채 자연을 거닐 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역의 다른 가게와 함께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 등 아이스크림 가게 치고는 독특한 활동을 이어 나갑니다.


'녹기전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눈앞에 놓인 자극적이고 단발적 즐거움이 아닌, 오래 지속될 울림 있는 즐거움을 희망하며 문을 열고 계십니다.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 날, '녹기전에' 대표 녹싸님을 만나 아이스크림에 담긴 가치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About 녹기 전에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염리동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녹기 전에'대표 녹싸라고 합니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과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게 되셨나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두산중공업에 입사했지만 6개월 만에 퇴사했고, 다음으로 입사한 현대자동차도 7개월 만에 퇴사했습니다. 틀 안에서 움직여야하는 직장 생활이 저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궁극적으로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가게를 차리기 전, '오감 중 어떤 감각을 오랫동안 유지하는가'를 생각하다 '먹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 '라면'과 '아이스크림' 이 둘 중에 고민하다 아이스크림을 선택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겨울에 쉴 수도 있어요. 그 점이 무언가를 쉽게 질려하는 저의 성격을 품어줄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공학과 아이스크림의 연관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재료마다 적당한 온도에서 적절한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분자 간의 관계를 알아야 해요. 아이스크림은 입자와 분자들이 공기를 머금은 상태에서 얼지도 녹지도 않은 '중간 단계'의 구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는 입자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해야만 해요. 그걸 식품공학이라고 얘기하죠. 식품을 뜯어 미세한 단위까지 보고 조절해야 아이스크림이 판매대에서 손님들의 입안으로 가기까지 적절한 입자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화학적인 측면을 알아야 합니다.




시즌 3에 대하여


사전에 만나 뵀을 때, 지금은 녹기전에 '시즌 3'라고 하셨던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맞아요 지금은 녹기전에 시즌 3입니다. '시즌'은 가게 운영 방향과 목적이 변화되었던 때에 나누어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즌 1은 단순히 '좋아서' 가게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익선동에 자리했을 때가 그랬죠. 그때는 '단순히 제품을 만든다 -> 판매한다 -> 수익을 낸다.' 그 자체에 집중을 했다면, 염리동으로 이사를 오던 시점은 시즌 2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 제 안의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었어요. 진지함과 재미 말이죠. 시즌 3는 시선을 저에게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던 시기입니다. 사실 영업한 지 7년 차가 되었고, 5년 이내 가게 폐업률이 높은 생태계임을 고려해보면 저희 가게는 사업경력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가게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종합하자면 가게를 운영하면서 제품에서 나로, 나에게서 모두로 확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가게를 운영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치 '새 시대의 마을 이장님' 같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을 두루 살피는 시선이 따뜻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대표님께서 시선을 자신에게서 '모두'로 돌리시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방문하시는 손님들이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오세요. 매일 그들을 마주하다 보니 '나이로 사람을 가름하지 않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아이스크림이라는 매체가 전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녹기전에는 모두와 통할 수 있죠. 그렇다 보니, 저는 고정된 한세대로서 고정된 또 다른 세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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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녹기전에'를 톺아보면 '특이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넘어 그 이상의 선한 영향력을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고 맨발로 숲을 거닐거나, 다른 가게들과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 활동 말이죠.

먼저 노을공원에 나무 심기는 노을공원시민모임 (이하 '노고시모')이 운영하는 프로젝트에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였어요. 노고시모는 '쓰레기 산' 난지도에 흙을 덮어 만든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인데, 가게가 친환경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식을 공유한다.' 정도로 참여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매장은 그들과 같이 친환경 활동을 한다기에는 굉장히 부족합니다. 적어도 포장 용기가 발생하잖아요. 저희만큼 무언가를 많이 버리는 곳은 없습니다. 친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부채 의식이죠. 맨발로 흙잔디 위를 걷는 프로그램은 섬세이와 함께 한 프로젝트인데, 섬세이 측이 노고시모와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제안해 주셨어요.


티셔츠를 만든 것은 마포구 일대의 가게들과 도보마포와 함께한 협업인데, 거창한 '로컬' 프로젝트라기 보다 그저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바라본다는 시각으로 참여했어요. 기획 대부분은 도보마포에서 진행하기도 하였고요.




보통 단체와 단체가 만나면 협업 개념으로 이뤄지는데, 대표님께서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동참하시는 것 같아요.

손님들께서도 협업 개념으로 생각하셔서 노고시모는 특히 저에게도 문의가 많이 왔어요. 하지만 저도 여느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배워나가야 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 드릴 말씀이 없더라고요. 저는 그저 의식을 나누며 함께 해보자는 의미로 지금까지의 활동에 참여했어요. 이렇게 같이 성장하는 거죠.




'녹기전에'가 나누는 가치


평소 재기발랄한 유머 코드가 담긴 인스타그램 피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그건 답하기가 진짜 어려워요ㅎㅎ. 아마도 유머를 계속 생각하다보니까 자연스레 유머가 나오는 것 같아요. 왜 하냐고 생각해 보면 저로서는 유머만큼 관계에 꼭 필요하면서도 멋진 수단이 없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신체조건, 타고난 DNA는 바꿀 수 없지만 유머는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 있잖아요, 유머를 통해 사람들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커다란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다른 사람과 매력적인 관계를 갖는 방법으로는 운동보다 유머 개발이 저에겐 더 쉬워요.


유머라는 게 터지면 개그고, 안 터지면 갑분싸인데 자신감의 원천이 있나요?

제가 유머를 시도할 때 주저하지 않느냐는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에 속해요.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을 많이 썼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잘 해내면 긍정적인 인식들이 따라오더라고요. 그 부분을 파악하고 나니 그때부터 딱히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다시 말해서 자신감이 뭘까 생각해 보면 '내가 잘될 거라는 기대감'인데, 저는 자신감으로 액션하는게 아니라 아예 상관 하지 않아요. 그러나 최대한 빠르게 사고하려고 하죠. 연산 속도가 빨라야 말의 손실(lose)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녹기전에'는 사업체에서 보기 드문 겨울 방학이 있어요.

예전에는 석 달씩 쉬었는데, 요즘에는 한 달 가량 방학을 가져요.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Willis Haviland Carrier) 선생님께서 에어컨을 발명하신 이후 인간은 사시사철 같은 온도로 일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는 그 안정감이 인간에게 주어진 덫 같았어요. 실내 온도 조절이 마음 같지 않던 시절, 우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오두막에 숨어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쉬었잖아요. 그러나 오피스 워크가 정착되면서 효율화 되긴 했는데 저에게 그 효율성은 맞지 않더라고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연히 저희는 효율성의 덫을 피해 겨울 방학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더라고요. 삶에서 휴가 이상의 긴 시간동안 '인생이란 뭘까'와 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을 이어가는 시간이 저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요. 



'녹기전에'의 나무위키인 '녹무위키'나 노션을 활용한 소통에도 적극적이시더라고요. 특히 주변 학교의 식단표를 공유하시는 점이 재밌었어요.

식단표는 학생들과의 교감을 위해 만들었어요. 당시 한창 학생들의 유입이 많아질 때 였기도 했고요. 그 시기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을 보면 '08김ㅇㅇ' , '05박ㅇㅇ' 이런 식이었죠ㅎㅎ 가끔 안부를 묻는 DM도 와요. 그래서 이 친구들에게 즐거움이 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식단표를 떠올렸어요. 즐거움 뿐만 아니라 내심 급식의 플랫폼화를 노렸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수기로 적다가 자동화를 시도했었는데 적용이 쉽지 않아서 요즘에는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있어요.


'녹기전에'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서울여자중학교 1학년 학생과 인터뷰하신 과정도 담겨있더라고요.

그런 소중한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아요. 저에게는 한편의 영화제 같았어요. 무려 내가 살아온 세월의 반절을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친구인데…. 인터뷰어였던 학생을 생각해 보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어요. 집에서 마냥 아이처럼 어리광 부릴 시기에 이곳에 와서 하나의 개체로서 책임감 있게 인터뷰에 임하더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다음 주(인터뷰 당일 기준)에도 중학생 친구들과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는데, 연락해 오는 과정에서 그 어떤 어른보다 정중해요.




'녹기전에'가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구성원이나 손님들과 나누고자 하는 가치가 있을까요?

이상한 얘기일 수 있는데, '목표로 하는 맛이 있나요?'라고 바꿔 묻는다면 '생각이 안 나는 맛이요'라고 대답해요. 먹은 다음 깔끔하게 떨어져서 생각조차 안 나는 맛이요. 먹고 나서 목에 잔여 감이 남아있으면 불편하잖아요. 그리고 질문해 주신 ‘어떤 가게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아이스크림은 그저 공동체를 잇는 매개체이고, 매개체에 담겨있는 가치를 전하고 공감하며 나누는 교류의 장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역설적으로 ‘특별히 여겨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도 생각해요. 각자의 자리에서 단발적인 즐거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긴 안목으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생각에는 저희 가게가 관여할 틈은 없지만, 그저 다들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ditor : 태진,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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