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3 화2'에 얽힌 이야기들
영화 '집의 시간들' 中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는 재산일까, 추억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바라보는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재화로서 기능하는 공간, 둘째는 개인의 서사가 담긴 추억의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선 두 가지 시선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나, 어느덧 서울은 여든 살이 넘은 도시가 되어 곳곳에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상황.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는 살기 좋은 집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발은 진행될 것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펴듯, 집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립보다 변화가 먼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재개발을 앞둔 원주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추억이 많음에도 재건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거나, 끊임없이 고장 나는 하수도 때문에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빛바랜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는 일을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주자들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속에서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의 일상을 축적했기에 아파트 곳곳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60%를 차지하는 주거 형태 '아파트' 아파트에 대한 두 가지의 관점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일까?
프랑스에서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 교수는 한국 사회를 '아파트 공화국'으로 정의합니다. 나아가 한국 사회가 단지형 아파트를 기본 형태로 보급하는 과정에서, 아파트가 사람이 살아가는 집으로서의 가치보다 중산층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가 더 부각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1962년 완공된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 아파트'의 두 달 치 월세가 대학교 등록금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의 기본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재산'이라는 관점으로 첫 단추가 끼웠졌을지도 모릅니다.
마포아파트 ©대한주택공사
고향을 기억하려는 사람들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대부분 아파트에서 보낸 '아파트 키즈'들은 SNS를 기반으로 재건축을 앞둔 노후 아파트 단지에 대한 집단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빙 작업과 각종 지역사회 참여 활동들을 전개하곤 합니다. 이는 차가운 재질의 콘크리트 아파트일지라도, 거주자가 장소에 대한 추억과 연결 지어 일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영국의 인문지리학자 크레스웰 교수에 따르면, 장소는 지표상에 객관적인 위치를 지닐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위한 물질적 배경으로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소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장소는 인간의 주관과 감정이 녹아 있어 특수한 의미를 부여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 Lee Kyunghwan
'장소에 대한 추억'이란 주제의 사진 작업 © metroporea
또 신진숙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에 따르면,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아파트에서 보낸 이들은 재건축을 통해 '고향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투기로 과열된 도시가 끊임없이 분열되고 해체되어온 한국 사회를 바라 볼 때, 장소의 상실은 도시인이 겪는 보편적 경험이자 감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개인의 역사로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아파트 거주자를 소비자나 소유자로서만 바라보도록 만들지 않고 도시 생산의 주체로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는 IMF 전후로 출생한 세대와 부모 세대 간, 각기 다른 아파트 경험을 통한 인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영화 '집의 시간들' 中
재개발이 답일까?
한국에서의 재건축은 여러 사람들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잃어버리는 경험일 수 있죠. 강조하고 싶은 점은, 집은 단순히 자산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이 성장하며 주체가 되어가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잘못된 시각으로 구획한 주거공간일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집, 혹은 동네와 교류하며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심지어 장소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가질 수도 있죠.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결국 '살기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도 필요한 시점에 들어섰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우리만의 도시의 이야기를 찾아 발굴하여 장소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재개발 방향이 논의되어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했을지도 모릅니다.
Editor : 태진
'방3 화2'에 얽힌 이야기들
영화 '집의 시간들' 中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는 재산일까, 추억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바라보는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재화로서 기능하는 공간, 둘째는 개인의 서사가 담긴 추억의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선 두 가지 시선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나, 어느덧 서울은 여든 살이 넘은 도시가 되어 곳곳에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상황.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는 살기 좋은 집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발은 진행될 것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펴듯, 집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립보다 변화가 먼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재개발을 앞둔 원주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추억이 많음에도 재건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거나, 끊임없이 고장 나는 하수도 때문에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빛바랜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는 일을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주자들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속에서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의 일상을 축적했기에 아파트 곳곳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60%를 차지하는 주거 형태 '아파트' 아파트에 대한 두 가지의 관점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일까?
프랑스에서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 교수는 한국 사회를 '아파트 공화국'으로 정의합니다. 나아가 한국 사회가 단지형 아파트를 기본 형태로 보급하는 과정에서, 아파트가 사람이 살아가는 집으로서의 가치보다 중산층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가 더 부각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1962년 완공된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 아파트'의 두 달 치 월세가 대학교 등록금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의 기본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재산'이라는 관점으로 첫 단추가 끼웠졌을지도 모릅니다.
마포아파트 ©대한주택공사
고향을 기억하려는 사람들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대부분 아파트에서 보낸 '아파트 키즈'들은 SNS를 기반으로 재건축을 앞둔 노후 아파트 단지에 대한 집단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빙 작업과 각종 지역사회 참여 활동들을 전개하곤 합니다. 이는 차가운 재질의 콘크리트 아파트일지라도, 거주자가 장소에 대한 추억과 연결 지어 일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영국의 인문지리학자 크레스웰 교수에 따르면, 장소는 지표상에 객관적인 위치를 지닐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위한 물질적 배경으로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소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장소는 인간의 주관과 감정이 녹아 있어 특수한 의미를 부여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 Lee Kyunghwan
'장소에 대한 추억'이란 주제의 사진 작업 © metroporea
또 신진숙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에 따르면,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아파트에서 보낸 이들은 재건축을 통해 '고향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투기로 과열된 도시가 끊임없이 분열되고 해체되어온 한국 사회를 바라 볼 때, 장소의 상실은 도시인이 겪는 보편적 경험이자 감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개인의 역사로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아파트 거주자를 소비자나 소유자로서만 바라보도록 만들지 않고 도시 생산의 주체로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는 IMF 전후로 출생한 세대와 부모 세대 간, 각기 다른 아파트 경험을 통한 인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영화 '집의 시간들' 中
재개발이 답일까?
한국에서의 재건축은 여러 사람들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잃어버리는 경험일 수 있죠. 강조하고 싶은 점은, 집은 단순히 자산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이 성장하며 주체가 되어가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잘못된 시각으로 구획한 주거공간일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집, 혹은 동네와 교류하며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심지어 장소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가질 수도 있죠.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결국 '살기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도 필요한 시점에 들어섰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우리만의 도시의 이야기를 찾아 발굴하여 장소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재개발 방향이 논의되어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했을지도 모릅니다.
Editor : 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