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건물로 하는 테트리스인가요?

건물에 '빈 하늘' 팔아요


사진 : 뉴욕의 160 East 22nd 거리


이게 대체 무슨 법이람?

뉴욕에는 특이한 건축 법규가 있습니다. 더 이상 건물의 높이를 증축할 계획이 없는 건물주가 건물의 공중 부분의 개발권을 판매할 수 있는 법인데요, 정확히는 도시 내 공지를 포함한 기존 건축물, 도로 등 현존하는 구조물의 상부공간에 대한 개발 권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권리를 개발권 양도 제도(TDR, Transferable Development Rights)로 지정하고, 공중권 (Air Rights) 양도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공중권 양도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건물의 높이는 해당 지역의 용적률 기준에 맞춰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만약 최대 20층 높이까지 쌓아 올릴 수 있는 용적률을 가진 부지에 5층짜리 A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은 추가로 15층을 증축할 수 있는데요, 만약 TDR이 적용되어 있는 지역에서 B 건물의 개발업자가 A 건물이 추가로 건설할 수 있는 15층에 대한 공중권을 매입하면 B건물에 추가적으로 증축할 수 있는 법이죠.



*용적률 : 건물을 짓도록 허가된 땅의 면적에 건물을 얼마나 높게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


하지만 네모 반듯하게 정돈된 건물들 사이에 테트리스처럼 올라선 건물들은 위태로워 보임과 동시에 미관을 해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시는 대체 왜 이런 법을 제정했을까요?


사진 : 일레븐 핸콕 콘도 (Eleven Hancock)


보존과 개발이란 두 마리 토끼

뉴욕과 같이 역사가 깊은 도시는 보존과 개발, 두 가지의 가치가 충돌하게 됩니다. 특히 오래된 상업 건축물의 경우에는 역사적인 가치와 기능적인 가치가 함축되어 있어 보존하려는 단체와 개발하려는 단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지자체는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 어려운 부분도 있죠. 지자체는 역사가 담긴 건물 보존을 통해 랜드마크 확립이 가능하지만, 부동산 개발에서 얻는 수익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공중권 양도 제도 입니다.



공중권 양도는 도심 개발 및 부동산 수익원을 충당하면서 저층 건물의 이익 보존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뉴욕시는 공공 주택의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약 10억 원 가치에 달하는 7.4㎦ (2,238,500평)의 공중권을 부동산 디벨로퍼에게 매각하며 필요한 재원을 확보했죠.


일본의 경우에도 공공시설 유지 보수를 위해 공중권 거래를 허용한 바 있습니다. 1914년 지어진 도쿄역은 2007년 유지 보수 비용 500억 엔(한화 약 4,849억 원)의 금액을 공중권 판매로 충당한 바 있는데, 인근에 신마루노유치 빌딩, 트윈타워, 도쿄 빌딩 등에 매각함으로써 보수 공사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도쿄역


제도가 주는 이점

공중권 양도는 건축 부지를 둘러싼 건물주 간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한편, 도심 내 초고층 빌딩 개발이 주요 목적이 아닌 역사적 건축물 및 부지를 보존할 목적에서 출발한 제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저층을 소유한 건물주들이 강제적으로 건물을 매각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로서 활용됩니다.


고층 빌딩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단계가 부지 매입인데, 그 과정에서 고층 빌딩 건축주는 구획을 정리하기 위해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고 옆 건물을 매입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공중권 양도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고, 공중권만 판매함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저층 건축물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고층 빌딩을 건축하려는 건물주의 이권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고층 빌딩이 들어설 경우 그 주변의 저층 빌딩들은 무리한 금액을 요구하거나 속칭 '알박기'를 통해 몸값을 부풀리는 경우도 있는데요, 제도를 활용해 옆 건물의 공중 개발 권한만을 양도받음으로써 무리한 지출을 낭비하는 방식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브루클린에 위치한 플랫부시 콘도 (FLATBUSH CONDOS)

서울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해당 제도는 뉴욕뿐 아니라 LA, 시애틀, 워싱턴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도심재생의 방안으로 활용 중이며, 기타 여러 도시도 이에 대해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인구수 1,000만에 육박하는 서울도 이러한 제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서울의 토지도 뉴욕과 같이 입체적으로 활용되면서 공간의 개발과 이용 방식의 효율성과 고도화에 대한 논의가 점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9일 오세훈 서울 시장의 '도시 건축 디자인 혁신 방안'이 발표되면서 서울의 공중권 양도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 주변에도 역사적인 혹은 추억이 담긴 주택과 상가가 있지 않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복잡한 심경이 밀려올 때가 있는데요, 을지로와 종로처럼 도시의 오랜 시간을 머금은 건축물이 밀집된 서울에도 공중권 양도 제도 도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 GSMA / 서울의 스카이 라인



Editor : 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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