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워커에 대한 존중을 담은 옷, 오토매틱포더피플

2025-04-04

옷을 만드는 일이 곧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라면


© 논라벨 매거진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패션으로써의 옷’을 만들지 않고, 특정한 직업군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작업 환경을 이해하며 옷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죠.


시즌마다 다른 직업군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명확한 근거가 있는 옷을 만드는 것. 작업복을 기반으로 하되, 단순히 실용적인 옷을 넘어서 그들의 노동에 대한 존중을 담아내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이 브랜드가 ‘다르게’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오토매틱포더피플(AUTOMATIC FOR THE PEOPLE)의 SS25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전정현 디렉터와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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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논라벨 매거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오토매틱포더피플에서 옷 만들고 있는 전정현이라고 합니다.


Q. 오토매틱포더피플에서 선보이는 옷들은 정돈된 외형을 가졌지만, 디테일은 하드 워커들의 작업복에서 가져온 옷들을 만들고 있어요. ‘인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근무복’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일하는 하드 워커들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하드 워커들의 작업복을 인하우스 근무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어요. 브랜드 설립 이후, 하드 워커들의 작업복에서 디테일을 가져와 인하우스에 맞게 조정해 소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토매틱포더피플의 옷은 거친 작업복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정제된 고운 무드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인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 외부에서 러프하게 일하는 분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하우스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이런 디테일을 담은 옷을 입었을 때,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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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벌목꾼’, ‘스피커 엔지니어’, ‘야생동물 규제당국’ 등 매 시즌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를 옷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에요. 시즌의 테마가 되는 직업군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직업이면서도 지금까지 있는 직업인지, 두 번째로는 많은 것들이 자동화된 상황임에도 핵심적인 일은 사람이 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나의 삶이 그들의 노동에 조금이라도 의존하고 있는지 등입니다.


Q. 이번 시즌은 어떤 직업을 주제로 완성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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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의 주제는 ‘LINE・MAN(전기원)’ 입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전율이 가장 짧지만, 그 이면에는 가장 높은 전기원 사망 사고율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반비례의 이유가 뭘까 찾아보니, 단전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이고, 이 때문에 단전 시간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사망 사고들이 급격하게 많이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나니 ‘내 삶이 저들에게 빚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부분을 나 같이 조그만 회사에서 관심 있게 보고, 조명해 줘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큰 회사는 다수의 이익이라든지 효율을 위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저희 같은 작은 규모의 회사는 좋아하는 것들이나 신념에 의해서 비효율적으로 움직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Q. 시즌을 준비하는 전체 과정을 놓고 봤을 때, 직업 조사에서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어요. 직업을 조사하는 과정에 대해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저는 제가 만드는 옷이 패션으로 분류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정말로 옷을 작업복으로 생각하면서 만들거든요. 근데 이 옷을 인하우스 근무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용도까지 끌고 와야 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만들고 있는 거고,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주제에 맞는 직업군을 옷으로 설득할 수 있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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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번 시즌 같은 경우는 전봇대에 올라가서 전기선을 교체하시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저는 한전에 가서 협조를 구하고, 그다음에 지사를 소개받고, 거기서 지부를 소개시켜주면 거기에 속한 전기원분들과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내보면서 ‘그분들이 일하는 데에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 생각하며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렇게 이번 시즌도 챕터를 7가지로 나눠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로는 전봇대 수정 시 공사 중임을 알리는 분이에요. 안전바를 설치하거나 차량을 유도하고, 낙하물을 방지하고 관리하시는 분이죠. 두 번째로는 고압 전기를 만질 때 하얀색 바스켓이 달린 활선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데, 그 차를 운전하시는 분이에요. 세 번째로는 2만 2900볼트가 흐르는 고압 전기를 만지시는 분, 네 번째로는 220에서 330볼트 정도 흐르는 저압 전기를 만지시는 분, 다섯 번째는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전류를 담당하는 분, 그리고 여섯 번째는 단전이 되면 민원을 해결하시는 분. 마지막 일곱 번째는 이분들을 모두 교육하고 있는 한전의 교육원으로 나눴습니다.


직업에 관련한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난 다음에 옷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전기원 분들에게 납득이 되는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명분이나 근거가 없는 옷은 만들어야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Q. 직업 조사를 통해 명분과 근거가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면,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작업자분이 옷을 입어보시기도 하나요?

이전 시즌 같은 경우는 공항공사 쪽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께서 도움을 주셨는데, 옷을 드리려고 하니 절대 안 받으시더라고요. 그분들은 무언가를 받으면 문제가 될 수가 있어서, 조사 과정에서 만나 뵀을 때에도 밥이나 커피도 절대 못 사게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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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즌의 테마가 총을 쏴서 버드스트라이크를 방지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었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우리를 조명해 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내가 하는 일은 사냥과는 달라. 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새들을 위협하는 거고, 최악의 경우일 때만 살상을 하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총 쏘고 새 잡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근데 너(전정현 디렉터)처럼 우리의 본질적인 측면을 봐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뿌듯하게 느껴져”라면서요. 지난 시즌은 아쉽게도 옷을 전해드리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이번 시즌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는 제품을 전달드릴 수 있었습니다.


Q. 이번 시즌에 전달드렸으니, 추후 그분들께 피드백을 받아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매 시즌에 동일한 컬러를 만드는 거예요.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다 동일한 소재, 동일한 컬러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그 작업자분들은 저희처럼 옷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옷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문화를 소비하려고 하는 분들보다는, 실질적으로 내가 일하기 위한 옷, 생존하기 위한 옷에 더 집중을 하시다 보니 옷 자체를 크게 많이 구매하지도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자분들께 옷을 증정해 드렸는데, 만약 그분이 다른 옷이 필요해 다시 저희 제품을 찾았을 때, 원단과 컬러가 달라지면 편하게 매치하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중심이 되는 라인은 동일한 소재와 컬러로 유지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에 드린 옷이 망가지거나 새로운 옷이 필요할 때도, 다른 하드 워커를 모티브로 만든 옷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죠. 결국, 어느 순간이든 작업복처럼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어요.


Q. 제품의 생산에 관련해서도 궁금한 점이 있는데, 오토매틱포더피플에서 이야기하는 1:1 제작 방식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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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혹시 1 대 1로 만드니까 테일러링처럼 맞춤인 건가?’, ‘비스포크 같은 건가?’ 하시는데, 사실 저희는 비스포크를 원하지 않고,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만든 옷은 철저하게 근무복을 베이스로 하거든요. 저는 제 옷이 작업복 영역에 있는 옷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만드는데, 샘플실처럼 A부터 Z까지 사람이 하나하나씩 모든 것들을 다 보면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작업복은 대부분 러프하게 입지만, 작업자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정교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제작 방식에서는 소매, 앞판, 등판을 각각 다른 사람이 만들고, 이를 합봉해 완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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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조금 더 사람다운 옷’은 ‘유연한 옷’이라고 생각해요. A부터 Z까지 한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될 때, 옷에 담긴 스탠스가 더욱 일관되게 드러난다고 믿거든요. 물론, 약간의 차이가 생긴다고 해서 나쁜 옷이 되거나 기능적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비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제가 만드는 옷이 특정한 사람을 위한 옷이기 때문이에요. 그 옷을 입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같은 스탠스를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Q. 디렉터님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신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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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즌에는 제 옷들을 팔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봉제를 했었어요. 다행히도 브랜드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지금은 봉제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명확한 기준은 있어요. 첫 번째 샘플과 마지막 샘플은 제가 직접 봉제를 해보고 있습니다.


첫 샘플을 제가 봉제하는 이유는, 패턴을 어느 정도 짜고 만들었을 때 패턴 메이커가 만든 옷이 그 의도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에요. 그래야 이 옷을 더 디벨롭할건지, 아니면 드롭할 건지 경정할 수 있거든요. 언제나 저희의 옷은 명확한 의도가 있어야 하고, 그 의도에 맞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샘플을 제가 봉제하는 이유는, 저희 옷을 봉제해 주시는 봉제사분들이 정말 프로페셔널한 분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의도한 것이 잘 나왔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마지막 샘플도 제가 봉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옳고 그름은 없지만, 제가 많이 고민한 것들에 대한 의도를 잘 전달하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오토매틱포더피플의 옷을 입어봤을 때 안감이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바지를 입었는데 조금 과장해서 안 입은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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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정말 좋은 안감을 쓰고 있기는 해요. 사실 옷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안감과 겉감을 누구도 나눠놓지 않았거든요. 효율적으로 생산하려고 하다 보니 조금 더 좋은 안감, 조금 덜 좋은 안감 정도로 사용하는 패브릭이 정해진 것 같은데, 저는 작업자들이 입었을 때 느낌 자체가 굉장히 편안했으면 했어요. 편안함은 외부에서 일하나, 실내에서 일하나 똑같이 중요한 거잖아요. 내 피부에 닿는 면적이 제일 많은 곳에 제일 가치 있고 제일 좋은 걸 투자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로는, 옷도 미식이랑 똑같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것과 비슷한 걸 만들어서 비슷한 경험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다른 경험을 드리기 위해서는 상투적으로 써왔던 것들을 쓰기보다는, 도전적인 선택을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안감에 굉장히 많은 포커싱이 됐던 것 같아요.


Q. 직업 조사 과정부터 1:1 제작을 고집하는 모습까지.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것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현시대에는 ‘바보같이 일한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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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저 옷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른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이 과정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이에요.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고, 타협 없이 만드는 것이 제게는 당연한 일이죠.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을 타인에게 대보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만 되는 사람이고,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을 설득하고 그다음에 시즌의 대상이 되는 작업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게 기준이다 보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만의 방식입니다.


Q. 많은 스토리를 담아낸 만큼 소비자들과 소통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만나본 소비자분들의 반응은 어떤지, 그 반응에 대한 디렉터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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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담긴 이야기를 설명했을 때 ‘굳이 옷에 이런 이야기를 담아야 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칭찬과 응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사실 옷 자체는 가치가 없는 물건이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더라도 제 옷들은 그냥 상품인 거고, 더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가치는 입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나는 거거든요. 작업자분들이 작업복으로 입을 것이냐, 아니면 패션으로써 스타일리시하게 입을 것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저는 그냥 제 일을 할 뿐인 거고, 스스로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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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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