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오늘의 나에게 어울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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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홍대입구역,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는 포토부스가 있습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하나쯤 보이는 네 컷 사진 부스들과는 생김새가 달라 보이는 이 포토부스는 필름을 사용하는 부스로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지기엔 충분한 공간이죠. 디지털의 편리함과 빠름에 익숙해진 삶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이야기해 보려 하는데요. 이터널로그를 만드신 김담비, 박은우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및 이터널로그 간단한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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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은우: 안녕하세요. 이터널로그 공동 대표인 김담비, 박은우라고 합니다. 이터널로그는 1960년대에 실제로 사용한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스웨덴 디자이너들과 함께 협업하여 들여온 한국 최초의 아날로그 포토부스입니다. 그리고 현재 국내에서 유일한 아날로그 포토부스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이터널로그는 어떤 공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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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이터널로그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 발굴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입니다. 아날로그 포토부스의 본고장인 유럽의 여유로운 지역적 분위기와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에서 느껴지는 낭만이 담긴 공간입니다.
은우: 특별한 날에 꾸미고 찍는 사진보다는 평범한 날 일상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혹은 혼자 지나가면서 툭 하고 찍을 수 있는 그런 포토부스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성했어요. 특히 아날로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부스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문처럼 느껴지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간 속 소품 디테일이 남달라 보이는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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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일상의 작은 부분과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소품들로 꾸몄어요. 담비님이 수집한 옛날 사진들이나, 저희 팀원들의 옛 사진 등으로 공간이 주는 차분한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1960년대의 실제 포토부스와의 연관성을 위해 소품들도 직접 빈티지 마켓들을 많이 돌아다니며 수집했어요. 경쾌하고 밝은 느낌보다는 그저 무던하게 추억에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서재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어 매장의 컬러감과 향기에도 우드톤이 많이 느껴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한국에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처음으로 들여오셨는데,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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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어릴 때부터 아빠가 다양한 카메라를 모으셨고, 그걸로 저를 자주 찍어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건 아빠가 어느 날 너무 비싼 카메라를 사 오셔서 엄마가 반품하지 않으면 집에 절대 못 들어온다 했는데, 아빠는 그 카메라를 들고 신발장에서 버티셨어요. 결국 그 고집을 꺾지 않으셨죠.
중학생 때 이사를 하면서 그 카메라가 서랍에서 나왔어요. 가족들이 짐을 정리하다가 8mm 테이프에 뭐가 들었나 틀어보았는데, 치매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찍은 생신 잔치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엄마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에 깊이 새겨졌던 것 같아요. 아빠가 쓰시던 필름 카메라 중 하나를 물려받아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단순히 카메라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기록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사랑도 함께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과에 다니면서 16mm 필름 카메라로 영화도 찍어보고, 취미로 흑백 사진을 인화하면서 필름에 대한 향수가 늘 있었어요. 저는 느린 사람이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이런 잠재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유럽에서 처음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보고 그 자연스러움과 클래식함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첫날 촬영을 하고, 그다음 날에도 또 촬영했고, 유럽에 있는 내내 그 얘기만 했어요. 한국에는 아날로그 부스가 있나 열심히 찾아봤지만, 정보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져와야겠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후회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아날로그 포토부스 사업을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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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 저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해요. 아예 새것에 내가 부여하는 스토리도 물론 좋아하지만 내가 부여하지 않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오래된 것들은 항상 흥미롭고 궁금한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오래된 사진에 대한 어떤 낭만 같은 게 있어요. 휴대폰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촬영할 수 있지만, 간편한 만큼 점점 보지 않는 사진들이 생겨나잖아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현상이 될 때까지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도 없고, 보정도 안되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한 장 한 장 촬영을 하게 돼요. 그때의 온도, 습도,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초반에 기숙사에서 과제가 너무 힘든 날에 찍었던 예쁜 하늘이 담긴 아파트 외벽의 필름 사진을 아직도 꺼내봐요. 그것처럼 별것도 아니지만 오래된 것이 주는 감동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문득 3년 전쯤 유럽에서 '아날로그 포토부스가 부활했다', '장인 정신으로 아날로그 포토부스들을 지켰던 테크니션들', 이런 외국 아티클들을 봤었어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너무 신나고 신기했죠. 종이 냄새나고 보정도 되지 않는 날것의 사진을 남겨주는 아날로그 포토부스에 대한 마음은 커졌고, 포토부스를 한국에 들여오고 싶었지만 쉽진 않았어요. 당시 회사원이었던 저에게는 아이디어에서 그칠 뿐이었죠. 하지만 담비님으로부터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됐고,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드디어 기회가 온 거였죠.
이터널로그의 팀원분들이 각자 다른 전공임에도 함께 부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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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저는 영화를 전공하면서 프리랜서로 사진 일을 같이 했었어요. 은우님과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면식이 아예 없었죠. 제가 먼저 유럽에 갔다가 포토부스 사업을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브랜드를 만들려면 기획부터 세세하게 해야 될게 많더라고요.
기획을 할 때 같은 사진 분야가 아닌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디자이너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마침 제 남자친구와 은우님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두 사람이 함께 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고,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은우 : 저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당시에는 회사에 재직 중이었어요. 그래서 창업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았었는데, 제 지인분이 어느 날 갑자기 “재밌는 걸 할 건데 같이 하지 않을래?”라고 연락을 주셔서 미팅 자리에 나갔죠. 그때 처음 포토부스 사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전부터 아날로그 포토부스의 매력은 알고 있었기에, 안 해보면 후회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60년대 유럽에서 사용하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복원하신 걸로 아는데, 카메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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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가끔 손님분들이 카메라 기종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하셔요. 그때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는데요. 쉬운 예시는 아니지만 1890년대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영화를 만들 때 사용했던 카메라와 비슷해서 이를 예시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그게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장비인데 제가 리옹 뤼미에르 박물관에 갔을 때 실물을 본 적이 있어요. 이터널로그에 사용하는 카메라와 구조나 크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이 카메라는 셔터, 렌즈 그리고 필름을 내려주는 톱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셔터가 돌아가면서 필름에 이미지를 남기고, 톱니가 돌아가면서 필름을 조금씩 밀어주는 방식이에요. 카메라가 이미지를 담기 위한 본질적인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시네마토그래프와 흡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전 시네마토그래프는 크랭크라고 하는 필름을 돌리는 손잡이로 직접 수동으로 돌렸다면, 지금은 전자 모터가 돌려주고 있어서 조금 더 복잡한 전기 선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결론적으론 최초의 영화 촬영에 사용되었던 카메라와 유사한 아날로그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카메라입니다.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 :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카메라, 영사기를 겸한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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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카메라의 부품 같은 경우에도 진짜 옛날 부품이겠네요.
은우 : 맞아요. 카메라의 렌즈, 셔터와 같은 부품들은 한국에 없을뿐더러, 현재는 구할 수 없는 부품들이에요. 해외 기술자들을 통해서 가져오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기존에 있는 카메라 자체만으로 계속 유지 보수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새거 같이 보여도 속은 완전히 1960년대의 옛날 부스예요.
오픈 전 처음 카메라 테스트 촬영했을 때 당시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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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긴장되고 온갖 불안감으로 전선을 못 꽂았어요. 영어로 되어있는 두꺼운 설명서를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읽고 가이드라인 영상을 수십 번 봤습니다. 이해를 먼저 하고 이쯤 이면 작동을 해봐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어 작동을 하나씩 해봤는데, 처음 약품을 넣고 테스트 촬영했을 땐 정말 끔찍했어요.
은우 :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세팅이 잘못되어 있었던 거죠. 우리가 어떤 걸 잘못했던 건지도 몰랐고, 밤낮으로 수십 장씩 찍어가면서 원인을 밝혀냈어요. 희생된 인화지들은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래도 해결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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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 오픈하셨을 때 인화지와 지금 사용하는 인화지가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교체 과정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으신 것 같아 당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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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저희에겐 가장 애증의 에피소드인데요, 전에 쓰던 인화지는 아예 단종이 됐어요. 전쟁 때문에 인화지를 만들던 회사가 문을 갑자기 닫아버렸고, 전 세계의 포토부스 기술자들이 인화지난에 힘들던 시기였습니다. 저희는 인화지 수량을 많이 확보했다고 생각했지만 소진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다른 인화지로 테스트해서 교체해야 될 시기가 너무 빨리 와버렸죠.
저희가 테스트를 해야 할 인화지는 매우 어두운 편이었어요. 촬영할 때 셔터, 감도, 조리개 3가지가 노출에 영향을 끼치는데, 부스 안 카메라는 셔터와 감도는 바꿀 수 없고 조리개는 디지털 렌즈와는 다르게 많이 열 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스 안쪽 구조를 바꾸거나 인화 약품 레시피를 바꾸거나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죠.
새로운 인화지 테스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막연하게 진행했어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테스트를 하고 모르는 부분은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받았어요. 미국, 호주,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등 각국의 여러 부스 운영자들과도 소통하고, 여러 사진작가, 사진학과 교수님, 화학 전문가 등 수소문해서 조언을 구하러 다녔어요. 낯선 작업임에도 직접 가게에도 찾아오셔서 장비도 같이 봐주시고 고민해 주셨어요. 모든 조언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퍼즐 조각이 탁 합쳐지니까 지금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어요.
테스트 기간은 3주 정도 걸렸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걸릴지, 이게 가능은 할지 모르고 시작했어요. 운이 좋지 않았다면 몇 개월이 더 걸렸을지도 몰라요. 테스트 작업이 얼마나 예민하냐면 1g, 1cm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져요. 어떤 걸 1g 더 넣었는지, 1도를 더 올리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 예민한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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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 끝나는 시점에 도움 주신 사진관 사장님께서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아날로그는 사랑이다. 아날로그 하는 사람들인데 사랑이 없으면 어떡하니?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하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때 "아, 우리가 이래서 아날로그를 했지"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우리도 도움이 필요할 땐 의견을 주는 팀이 돼보자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화지 테스트를 거듭할수록 퀄리티가 좋아지는 사진들 | © 이터널로그
포토부스에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름을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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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하나뿐인 존재에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부스는 저희에겐 정말 소중한 친구이고 애틋해서 강아지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스누피와 카메라를 합친 ‘스누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스누카에게 도착한 사연’이라는 콘텐츠도 진행하시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담비 : 가오픈 당시 인화지 수급 이슈로 어쩔 수 없이 하루 100장 제한을 진행하게 되면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멀리서 오셨는데 못 찍고 가신 분들도 많아 속상했었죠. 우리가 가게를 열면서 꿈꿨던 모습들이 있었는데 소소하게 오셨던 모든 분들을 못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픈하자마자 줄 서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날로그라는 것 자체가 사실 되게 느린 작업이라 어떤 분들은 여기를 즐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하다 ‘사연을 받아서 대관해 주는 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회의를 하게 되었고, 이터널로그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도록, ‘스누카에게 도착한 사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은우 : 오픈 초반에는 거의 다 사연을 받았고,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신 분들 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추억을 남기고 가셨어요. 어떤 이벤트, 프로모션의 취지가 아닌 정말 더 많은 분들이 추억을 남기고 가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화지 공급도 잘 되고 있고, 운영 시간도 바뀌어서 사연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여유롭게 촬영을 하고 가시고 있어요. 운영 시간 내에 사진을 찍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현재도 사연 시스템을 운영 중이에요. 스누카와 이터널로그는 언제나 모퉁이 가게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게에 방문한 사연자분이 직접 찍어주신 폴라로이드들 | © 이터널로그
그러면 다양한 사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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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포피라는 강아지입니다. 포피는 캐나다로 입양 가기 전에 임시 보호를 맡았던 보호자 분과같이 왔었어요. 겁이 많던 친구라 보호자분에게 안겨서 떨던 친구였는데 멀고 낯선 곳에서 잘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사진을 찍고 다음날 바로 캐나다로 가서 더욱 기억에 남는 사연이에요. 지금은 포피가 보호자님과 멀리 떨어져서 지내지만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연결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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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 또 기억에 남는 사연은 결혼기념일에 사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시작을 알린 커플분이 계셨어요. 면사포를 쓰시고 정장을 입으셨던 두 분은 이전에 결혼기념일마다 사진을 남기신다고 하셨었어요. 외국에서 포토부스 촬영을 해보셨는데, 저희 매장 오픈 소식을 듣고는 ‘한국에서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여기다’ 하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셔서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는 유료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데, 두 분 덕에 이터널로그 바이럴도 많이 됐고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가게 안쪽에 액자 속 필름 사진들 모두 직접 수집하신 것 같아요. 디지털 사진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 사진들만 수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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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아날로그를 주로 수집하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도 저희와 결이 맞는다면 걸 수 있어요. 주로 아날로그 사진을 많이 수집한 이유는 아날로그에는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유대감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죠. 저희 가게에 걸린 사진들은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시대가 다양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빈티지 느낌이 강한 의복이나 시대의 트렌드가 드러난 사진은 잘 걸지 않아요. 한 번쯤은 내가 경험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사진을 거는 편입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사진을 바꾸고 있는데 저희가 전부 원본을 구매하거나 직접 촬영해서 하나밖에 없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사진들이에요.
그렇다면 아날로그 사진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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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는 사진들이지 않을까요? 아날로그라는 건 사실 그 과정에 품이 엄청 많이 들잖아요. 인화도 해야 되고 한 장을 찍을 때도 굉장히 신중해야 되고 직접 뽑는 과정도 다 겪게 되는데, 디지털은 사실 조금 그 과정들이 생략이 돼 있다 보니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가치도 조금 다르겠죠. 결과적으로 예쁜 사진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과정에서 주는 의미가 좀 더 큰 작업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은우 : 아날로그 사진에서는, 나의 본래의 모습과 시간을 이 한 사진에 소중히 담아내는 경험이 힘이라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아날로그 포토부스 사진은 특히나 디지털과 달리 복제, 수정되지 않은 원형이라는 점과 그 아날로그 경험을 뒷받침해 주는 ‘공간’이 제공되기 때문에 더 근원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밖에 없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진인 거죠. 결과물도 모르고 찍어보는 그 행위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뒤 받아본 아날로그 사진을 바라봤을 때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가 이렇게 웃었구나!”라며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이네요. 각자 생각하시는 "사진이 주는 낭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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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저는 사진이 주는 낭만은 노스탤지어와 가깝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나 음악은 형체가 없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사진은 너무나 명확하게 눈앞에 존재해요. 그러나 그와 관련된 기억들과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계속 흐릿해지죠. 그 당시의 나는 사진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그때 느끼는 향수가 낭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우 : 저도 비슷하지만, 사진은 기록하는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진이라는 기록 수단은 영상이나 텍스트와는 다르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어떤 순간이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에요. 그 순간에 대한 감정이나 앞뒤의 맥락을 내가 상상하며 풀어낼 수 있는 시각적인 매개체라는 점이 사진이 주는 낭만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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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수연
평범한 오늘의 나에게 어울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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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홍대입구역,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는 포토부스가 있습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하나쯤 보이는 네 컷 사진 부스들과는 생김새가 달라 보이는 이 포토부스는 필름을 사용하는 부스로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지기엔 충분한 공간이죠. 디지털의 편리함과 빠름에 익숙해진 삶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이야기해 보려 하는데요. 이터널로그를 만드신 김담비, 박은우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및 이터널로그 간단한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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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은우: 안녕하세요. 이터널로그 공동 대표인 김담비, 박은우라고 합니다. 이터널로그는 1960년대에 실제로 사용한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스웨덴 디자이너들과 함께 협업하여 들여온 한국 최초의 아날로그 포토부스입니다. 그리고 현재 국내에서 유일한 아날로그 포토부스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이터널로그는 어떤 공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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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이터널로그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 발굴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입니다. 아날로그 포토부스의 본고장인 유럽의 여유로운 지역적 분위기와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에서 느껴지는 낭만이 담긴 공간입니다.
은우: 특별한 날에 꾸미고 찍는 사진보다는 평범한 날 일상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혹은 혼자 지나가면서 툭 하고 찍을 수 있는 그런 포토부스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성했어요. 특히 아날로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부스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문처럼 느껴지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간 속 소품 디테일이 남달라 보이는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 논라벨 매거진
은우: 일상의 작은 부분과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소품들로 꾸몄어요. 담비님이 수집한 옛날 사진들이나, 저희 팀원들의 옛 사진 등으로 공간이 주는 차분한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1960년대의 실제 포토부스와의 연관성을 위해 소품들도 직접 빈티지 마켓들을 많이 돌아다니며 수집했어요. 경쾌하고 밝은 느낌보다는 그저 무던하게 추억에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서재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어 매장의 컬러감과 향기에도 우드톤이 많이 느껴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한국에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처음으로 들여오셨는데,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논라벨 매거진
담비 : 어릴 때부터 아빠가 다양한 카메라를 모으셨고, 그걸로 저를 자주 찍어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건 아빠가 어느 날 너무 비싼 카메라를 사 오셔서 엄마가 반품하지 않으면 집에 절대 못 들어온다 했는데, 아빠는 그 카메라를 들고 신발장에서 버티셨어요. 결국 그 고집을 꺾지 않으셨죠.
중학생 때 이사를 하면서 그 카메라가 서랍에서 나왔어요. 가족들이 짐을 정리하다가 8mm 테이프에 뭐가 들었나 틀어보았는데, 치매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찍은 생신 잔치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엄마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에 깊이 새겨졌던 것 같아요. 아빠가 쓰시던 필름 카메라 중 하나를 물려받아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단순히 카메라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기록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사랑도 함께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과에 다니면서 16mm 필름 카메라로 영화도 찍어보고, 취미로 흑백 사진을 인화하면서 필름에 대한 향수가 늘 있었어요. 저는 느린 사람이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이런 잠재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유럽에서 처음 아날로그 포토부스를 보고 그 자연스러움과 클래식함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첫날 촬영을 하고, 그다음 날에도 또 촬영했고, 유럽에 있는 내내 그 얘기만 했어요. 한국에는 아날로그 부스가 있나 열심히 찾아봤지만, 정보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져와야겠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후회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아날로그 포토부스 사업을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어요.
© 논라벨 매거진
은우 : 저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해요. 아예 새것에 내가 부여하는 스토리도 물론 좋아하지만 내가 부여하지 않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오래된 것들은 항상 흥미롭고 궁금한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오래된 사진에 대한 어떤 낭만 같은 게 있어요. 휴대폰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촬영할 수 있지만, 간편한 만큼 점점 보지 않는 사진들이 생겨나잖아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현상이 될 때까지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도 없고, 보정도 안되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한 장 한 장 촬영을 하게 돼요. 그때의 온도, 습도,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초반에 기숙사에서 과제가 너무 힘든 날에 찍었던 예쁜 하늘이 담긴 아파트 외벽의 필름 사진을 아직도 꺼내봐요. 그것처럼 별것도 아니지만 오래된 것이 주는 감동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문득 3년 전쯤 유럽에서 '아날로그 포토부스가 부활했다', '장인 정신으로 아날로그 포토부스들을 지켰던 테크니션들', 이런 외국 아티클들을 봤었어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너무 신나고 신기했죠. 종이 냄새나고 보정도 되지 않는 날것의 사진을 남겨주는 아날로그 포토부스에 대한 마음은 커졌고, 포토부스를 한국에 들여오고 싶었지만 쉽진 않았어요. 당시 회사원이었던 저에게는 아이디어에서 그칠 뿐이었죠. 하지만 담비님으로부터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됐고,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드디어 기회가 온 거였죠.
이터널로그의 팀원분들이 각자 다른 전공임에도 함께 부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논라벨 매거진
담비 : 저는 영화를 전공하면서 프리랜서로 사진 일을 같이 했었어요. 은우님과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면식이 아예 없었죠. 제가 먼저 유럽에 갔다가 포토부스 사업을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브랜드를 만들려면 기획부터 세세하게 해야 될게 많더라고요.
기획을 할 때 같은 사진 분야가 아닌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디자이너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마침 제 남자친구와 은우님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두 사람이 함께 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고,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은우 : 저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당시에는 회사에 재직 중이었어요. 그래서 창업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았었는데, 제 지인분이 어느 날 갑자기 “재밌는 걸 할 건데 같이 하지 않을래?”라고 연락을 주셔서 미팅 자리에 나갔죠. 그때 처음 포토부스 사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전부터 아날로그 포토부스의 매력은 알고 있었기에, 안 해보면 후회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60년대 유럽에서 사용하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복원하신 걸로 아는데, 카메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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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가끔 손님분들이 카메라 기종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하셔요. 그때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는데요. 쉬운 예시는 아니지만 1890년대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영화를 만들 때 사용했던 카메라와 비슷해서 이를 예시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그게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장비인데 제가 리옹 뤼미에르 박물관에 갔을 때 실물을 본 적이 있어요. 이터널로그에 사용하는 카메라와 구조나 크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이 카메라는 셔터, 렌즈 그리고 필름을 내려주는 톱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셔터가 돌아가면서 필름에 이미지를 남기고, 톱니가 돌아가면서 필름을 조금씩 밀어주는 방식이에요. 카메라가 이미지를 담기 위한 본질적인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시네마토그래프와 흡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전 시네마토그래프는 크랭크라고 하는 필름을 돌리는 손잡이로 직접 수동으로 돌렸다면, 지금은 전자 모터가 돌려주고 있어서 조금 더 복잡한 전기 선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결론적으론 최초의 영화 촬영에 사용되었던 카메라와 유사한 아날로그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카메라입니다.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 :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카메라, 영사기를 겸한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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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카메라의 부품 같은 경우에도 진짜 옛날 부품이겠네요.
은우 : 맞아요. 카메라의 렌즈, 셔터와 같은 부품들은 한국에 없을뿐더러, 현재는 구할 수 없는 부품들이에요. 해외 기술자들을 통해서 가져오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기존에 있는 카메라 자체만으로 계속 유지 보수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새거 같이 보여도 속은 완전히 1960년대의 옛날 부스예요.
오픈 전 처음 카메라 테스트 촬영했을 때 당시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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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긴장되고 온갖 불안감으로 전선을 못 꽂았어요. 영어로 되어있는 두꺼운 설명서를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읽고 가이드라인 영상을 수십 번 봤습니다. 이해를 먼저 하고 이쯤 이면 작동을 해봐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어 작동을 하나씩 해봤는데, 처음 약품을 넣고 테스트 촬영했을 땐 정말 끔찍했어요.
은우 :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세팅이 잘못되어 있었던 거죠. 우리가 어떤 걸 잘못했던 건지도 몰랐고, 밤낮으로 수십 장씩 찍어가면서 원인을 밝혀냈어요. 희생된 인화지들은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래도 해결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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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 오픈하셨을 때 인화지와 지금 사용하는 인화지가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교체 과정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으신 것 같아 당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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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저희에겐 가장 애증의 에피소드인데요, 전에 쓰던 인화지는 아예 단종이 됐어요. 전쟁 때문에 인화지를 만들던 회사가 문을 갑자기 닫아버렸고, 전 세계의 포토부스 기술자들이 인화지난에 힘들던 시기였습니다. 저희는 인화지 수량을 많이 확보했다고 생각했지만 소진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다른 인화지로 테스트해서 교체해야 될 시기가 너무 빨리 와버렸죠.
저희가 테스트를 해야 할 인화지는 매우 어두운 편이었어요. 촬영할 때 셔터, 감도, 조리개 3가지가 노출에 영향을 끼치는데, 부스 안 카메라는 셔터와 감도는 바꿀 수 없고 조리개는 디지털 렌즈와는 다르게 많이 열 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스 안쪽 구조를 바꾸거나 인화 약품 레시피를 바꾸거나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죠.
새로운 인화지 테스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막연하게 진행했어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테스트를 하고 모르는 부분은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받았어요. 미국, 호주,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등 각국의 여러 부스 운영자들과도 소통하고, 여러 사진작가, 사진학과 교수님, 화학 전문가 등 수소문해서 조언을 구하러 다녔어요. 낯선 작업임에도 직접 가게에도 찾아오셔서 장비도 같이 봐주시고 고민해 주셨어요. 모든 조언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퍼즐 조각이 탁 합쳐지니까 지금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어요.
테스트 기간은 3주 정도 걸렸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걸릴지, 이게 가능은 할지 모르고 시작했어요. 운이 좋지 않았다면 몇 개월이 더 걸렸을지도 몰라요. 테스트 작업이 얼마나 예민하냐면 1g, 1cm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져요. 어떤 걸 1g 더 넣었는지, 1도를 더 올리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 예민한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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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 끝나는 시점에 도움 주신 사진관 사장님께서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아날로그는 사랑이다. 아날로그 하는 사람들인데 사랑이 없으면 어떡하니?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하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때 "아, 우리가 이래서 아날로그를 했지"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우리도 도움이 필요할 땐 의견을 주는 팀이 돼보자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화지 테스트를 거듭할수록 퀄리티가 좋아지는 사진들 | © 이터널로그
포토부스에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름을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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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하나뿐인 존재에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부스는 저희에겐 정말 소중한 친구이고 애틋해서 강아지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스누피와 카메라를 합친 ‘스누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스누카에게 도착한 사연’이라는 콘텐츠도 진행하시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담비 : 가오픈 당시 인화지 수급 이슈로 어쩔 수 없이 하루 100장 제한을 진행하게 되면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멀리서 오셨는데 못 찍고 가신 분들도 많아 속상했었죠. 우리가 가게를 열면서 꿈꿨던 모습들이 있었는데 소소하게 오셨던 모든 분들을 못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픈하자마자 줄 서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날로그라는 것 자체가 사실 되게 느린 작업이라 어떤 분들은 여기를 즐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하다 ‘사연을 받아서 대관해 주는 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회의를 하게 되었고, 이터널로그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도록, ‘스누카에게 도착한 사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은우 : 오픈 초반에는 거의 다 사연을 받았고,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신 분들 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추억을 남기고 가셨어요. 어떤 이벤트, 프로모션의 취지가 아닌 정말 더 많은 분들이 추억을 남기고 가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화지 공급도 잘 되고 있고, 운영 시간도 바뀌어서 사연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여유롭게 촬영을 하고 가시고 있어요. 운영 시간 내에 사진을 찍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현재도 사연 시스템을 운영 중이에요. 스누카와 이터널로그는 언제나 모퉁이 가게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게에 방문한 사연자분이 직접 찍어주신 폴라로이드들 | © 이터널로그
그러면 다양한 사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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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포피라는 강아지입니다. 포피는 캐나다로 입양 가기 전에 임시 보호를 맡았던 보호자 분과같이 왔었어요. 겁이 많던 친구라 보호자분에게 안겨서 떨던 친구였는데 멀고 낯선 곳에서 잘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사진을 찍고 다음날 바로 캐나다로 가서 더욱 기억에 남는 사연이에요. 지금은 포피가 보호자님과 멀리 떨어져서 지내지만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연결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뭉클합니다.
© 이터널로그
은우 : 또 기억에 남는 사연은 결혼기념일에 사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시작을 알린 커플분이 계셨어요. 면사포를 쓰시고 정장을 입으셨던 두 분은 이전에 결혼기념일마다 사진을 남기신다고 하셨었어요. 외국에서 포토부스 촬영을 해보셨는데, 저희 매장 오픈 소식을 듣고는 ‘한국에서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여기다’ 하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셔서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는 유료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데, 두 분 덕에 이터널로그 바이럴도 많이 됐고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가게 안쪽에 액자 속 필름 사진들 모두 직접 수집하신 것 같아요. 디지털 사진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 사진들만 수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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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로그
담비 : 아날로그를 주로 수집하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도 저희와 결이 맞는다면 걸 수 있어요. 주로 아날로그 사진을 많이 수집한 이유는 아날로그에는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유대감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죠. 저희 가게에 걸린 사진들은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시대가 다양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빈티지 느낌이 강한 의복이나 시대의 트렌드가 드러난 사진은 잘 걸지 않아요. 한 번쯤은 내가 경험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사진을 거는 편입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사진을 바꾸고 있는데 저희가 전부 원본을 구매하거나 직접 촬영해서 하나밖에 없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사진들이에요.
그렇다면 아날로그 사진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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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는 사진들이지 않을까요? 아날로그라는 건 사실 그 과정에 품이 엄청 많이 들잖아요. 인화도 해야 되고 한 장을 찍을 때도 굉장히 신중해야 되고 직접 뽑는 과정도 다 겪게 되는데, 디지털은 사실 조금 그 과정들이 생략이 돼 있다 보니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가치도 조금 다르겠죠. 결과적으로 예쁜 사진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과정에서 주는 의미가 좀 더 큰 작업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은우 : 아날로그 사진에서는, 나의 본래의 모습과 시간을 이 한 사진에 소중히 담아내는 경험이 힘이라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아날로그 포토부스 사진은 특히나 디지털과 달리 복제, 수정되지 않은 원형이라는 점과 그 아날로그 경험을 뒷받침해 주는 ‘공간’이 제공되기 때문에 더 근원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밖에 없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진인 거죠. 결과물도 모르고 찍어보는 그 행위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뒤 받아본 아날로그 사진을 바라봤을 때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가 이렇게 웃었구나!”라며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이네요. 각자 생각하시는 "사진이 주는 낭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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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 저는 사진이 주는 낭만은 노스탤지어와 가깝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나 음악은 형체가 없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사진은 너무나 명확하게 눈앞에 존재해요. 그러나 그와 관련된 기억들과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계속 흐릿해지죠. 그 당시의 나는 사진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그때 느끼는 향수가 낭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우 : 저도 비슷하지만, 사진은 기록하는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진이라는 기록 수단은 영상이나 텍스트와는 다르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어떤 순간이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에요. 그 순간에 대한 감정이나 앞뒤의 맥락을 내가 상상하며 풀어낼 수 있는 시각적인 매개체라는 점이 사진이 주는 낭만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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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