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레트로 가젯 샵 레몬서울

2024-10-11

바쁜 현대 사회 속 느린 시간을 가진 공간


© 논라벨 매거진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종로, 그 사이 오랜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레트로 가젯 편집 숍 <레몬서울>이 있습니다. 이곳은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만들어진 레트로 가젯들이 전시, 판매되는 공간인데요.

느린 시간이 흘러가는 레몬서울에서는 나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존재합니다. 콤팩트하게 손으로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워크맨부터 풍성한 사운드를 위한 오디오 시스템까지. 레몬서울의 시간을 담당하는 김보라, 윤종후 대표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독자들을 위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발매되었던 가젯들을 소개하는 샵, 레몬서울을 운영하고 있는 김보라, 윤종후라고 합니다.

어떤 계기로 제품 수집을 시작하게 되셨고 어떤 제품이 첫 시작이었는지 궁금한데요.

보라: 과거 브랜드 회사를 운영했었는데, 당시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가까운 일본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어요. 거기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작은 소품들을 하나둘씩 구매하게 된 것이 양이 방대해졌고요. 처음으로 구매하게 된 것은 바이닐이었어요. 안에 무슨 노래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액자처럼 놓으면 예쁠 것 같아서 두어 개 사다가, 문득 안에 무슨 노래가 있는지 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시모키타자와에서 베스탁스 포터블 턴테이블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정말 편하게 사용 가능한 포터블 턴테이블이었어요. 처음부터 희소한 제품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첫 플레이어였습니다.

지금도 가지고 계시나요?

보라: 처음 산 제품이라 이사를 다닐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녀요. 딱히 희소하고 소장 가치가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물건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있잖아요. 처음이라 지식도 많이 없고 관리법도 잘 몰라서 노랗게 황변이 되긴했는데, 구매 당시 종후님 집으로 가져가서 함께 음악을 듣고 다시 집으로 가져오고, 알차게 사용했던 추억이 있어요.




제품을 수집하러 해외로 많이 가실 텐데, 혹시 국내에서도 제품을 많이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보라: 국내에서도 찾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사실 쉽지는 않아요.

종후: 보통 국내에서는 컬렉터들에게서 물건이 나와요.

아 당연히 동묘, 종로를 떠올렸는데 이건 또 아닌가 봐요.

보라: 물건은 사람한테서 나옵니다.





가지고 있는 제품 중에서 제일 애정 하는 제품은 또 어떤 게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보라: 저는 색감에 많이 집착하는 편이에요. 변색이 되어도 예쁘게 변색이 된다든지, 혹은 아예 변색되지 않고 4-50년 전에 발매되었던 그 색깔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지금은 보통 가전제품들이 거의 모노톤이잖아요. 근데 70-90년도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다양한 색깔을 많이 썼고, 재질이 달라서 그런지 똑같은 유색이다 하더라도 지금 나오는 색감과는 다르게 그 시대만의 특유한 색감이 있거든요.

근데 정말 딸기 우유색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오디오 시스템이 있었어요. 보통 오디오 시스템 같은 경우에는 턴테이블이 들어가야 하니까 바이닐보다 좀 더 큰 사이즈 플레이트가 있어야 하고, 카세트 테이프가 있고, 스피커가 있고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사이즈가 커질 수 있는데, 그 카세트는 제가 본 오디오 시스템 중에서 가장 콤팩트한 사이즈였어요. 정말 작은데 모든 기능이 알차게 들어가 있고 사운드도 좋고 디자인도 예쁘고. 제 방에 잘 모셔두고 있어요. 아까워서 못 쓰고 있는데 그 제품이 제가 가장 아끼는 모델이에요.




수많은 제품을 접하고 수집도 하셨을텐데, 이건 정말 특별하다고 느꼈던 제품이 있으신가요?

보라: 엄청 특별하진 않지만, 초창기 제품을 모으기 시작할 당시에 충격을 받았던 제품이 있었어요. 조그마한 라디카세 제품인데, 그 모델은 특정 주파수를 맞추면 내가 재생하는 음악을 같은 주파수를 맞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제품이었어요. 하나의 작은 라디오 방송국이 될 수 있는 기기인 거죠. 지금 블루투스 스피커의 초창기 버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너무 신선하다고 느껴졌어요. 내가 듣는 음악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주파수만 맞추면 되는 단순한 원리로 말이죠.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네요, 그 제품도 마찬가지로 1970년대쯤 나온 제품인 거죠?

보라: 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쯤? 상상이 되는 거죠, 당시에 학생이었던 친구들이 모여서 주파수를 맞춰서 함께 듣는 모습같은거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활용해 들었겠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음향 관련 레트로 가전을 주류로 하시다 보니 음향 기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레트로 가젯을 통해서 듣게 되는 음악의 매력은 또 어떤 점이 있을지 궁금한데요.

종후: 그 당시 음악들은 그 당시에 발매되었던 플레이어로 소리를 들어야 느낌이 나요. 시대별로 사운드 느낌들도 다 다르고요. 예를 들어서 비틀즈 음악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60년대, 혹은 70년대 그 당시에 나왔던 플레이어로 듣는 거예요. 이게 레트로의 매력이랄까요?

보라: 생선회를 호텔 안에서 먹는 거랑 바닷가 앞에서 먹을 때의 느껴지는 다른 맛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맛이 더 산다고 할까요?


SOUNDER 001 | © @photomikeyang


SOUNDER SKYLINE | © @chulhoonjung


LEMON SEOUL X BLUE GIANT 콜라보레이션 헤드폰


블루자이언트와 함께 콜라보한 헤드셋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음향기기를 굿즈로 낸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는데요.

보라: 작은 헤드폰도 만들어 봤지만 큰 스피커도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저희가 작업했던 것 중에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인디살롱과 함께 가구적인 요소와 더불어 빈티지 유닛들,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테크닉, 디자인을 합쳐서 스피커를 만들었어요.

테이블로도 쓸 수 있고 안에 앰프를 내장해서 스피커 자체로도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도록 했어요. 위에 턴테이블을 올리면 디제이 부스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요. 예전에 나온 제품들은 스피커, 앰프, 턴테이블이 다 따로 있어서 많이 질문을 받았던 게 이걸 놓을 테이블이나 선반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 였거든요. 그래서 70년대 유닛들로 좋은 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에 없던 것들을 넣어 만들었죠.

두 번째 스피커는 뮤지션 라디오피어가 새 앨범을 내면서 내 음악을 위한 스피커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통해 제작하게 되었어요. 발매되기 전 매일매일 그 음악을 듣고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 디자인으로 제작했고 한남동에 위치한 워킹위드프렌드에서 전시를 했었습니다.


 

레몬서울만의 특별한 굿즈를 내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보라: 사실 아이디어는 엄청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저희는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정말 필요한 굿즈를 만들고 싶어서 실제 발매까지 많이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종후: 사실 굿즈라는 게 저희가 생산해서 많이 소비가 되면 좋겠지만, 만약 판매가 되지 않는다면 다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저희는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무분별한 굿즈는 지양하고 있습니다.

보라: 예를 들어 에코백에 레몬서울을 찍어서 판매하게 된다면, 레트로 가젯을 좋아하지만 가격이 부담되거나 놓을 공간이 없는 분들이 기념품처럼 구매하기 좋겠죠. 하지만 단순한 소비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들은 너무 많잖아요.



레몬서울을 찾는 고객들의 연령대도 궁금한데요.

보라: 개인적으로 고객분들의 연령대가 많이 의외였어요. 전체적으로는 10대부터 60대까지 있어요. 20~30대가 가장 많기는 하고요. 연령대가 낮은 10대 20대는 아무래도 작은 내 방 안에서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가 내장된 플레이어들을 선호하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워크맨을 구매하시는 것 같아요. 좀 더 연령대가 높아지면 내가 셋팅해서 들을 수 있는 데크라든지, 스피커라든지 아니면 아예 컬렉터블한 보기 힘든 아이템을 찾으세요.



빈티지 가젯을 판매한다는 제품의 선순환, 리사이클링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남다른 기여도를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또 다른 일화나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보라: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초반에 판매했던 제품이 2-3년이 지나서 다시 이 공간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 빈티지 물건의 경우 특유의 태닝이라든지, 색감의 변화 흔적 같은 게 남아 있기 때문에 딱 보면 저희가 판매했던 제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들고오신 고객님 얼굴이 다른 거에요. 그래서 왜 저분이 저 제품을 들고 오시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구매해가신 고객님이 제품을 잘 사용하시다가 작업실에 제품을 두었고, 친구분께서 그걸 보고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되어서 선순환이 되었던 거예요. 그분이 제품을 어깨에 메고 음악을 들으면서 오시는데, 저희보다 제품을 더 잘 즐기시고 사용하시는 분한테 가서 너무 뿌듯했던 경험이었죠. 그리고 저희가 예전에 디자이너를 했다 보니,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게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발매되었던 제품들이더라도 부품 하나를 고쳐서 다시 쓸 수 있고, 오히려 환경적으로도 좋고, 디자인적으로도 쿨하고 멋진 것들이 많으니까 보람차죠.



레몬서울의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보라: 2~3년 전만 해도 전시도 많이 하고 콜라보도 하면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좋아하는 걸 하고 나니까 오히려 본업에 충실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이미 5년 정도를 해왔고, 저희 피드를 보면 똑같은 걸 포스팅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아직도 ‘우리가 보여줄 새로운 것들이 남아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게 가장 어렵고 제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종후: 여담이지만 저는 최근에 50년대 미국 물건에 꽂혔어요. ‘쇼와 레트로’라고 1970-90년대 일본에 제일 잘 살았던 시절의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있었던 제품들을 수집하다 보니 이제는 미국 레트로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미국이 가장 풍요로웠을 1950-60년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전 세계에서 우위에 있었을 당시, 지금 생각하면 고철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는 그런 제품들을 수집 하고 있습니다.


© 논라벨 매거진


집안이 역사박물관 같을 것 같아요.

보라: 그래서 최근에 오히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원래는 짐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이걸 더 예쁘게 놓을 수 있도록 큰 집으로 가자’ 하다가 더 작은 집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집이 너무 예쁘고 기운이 따뜻한 거예요. 그래서 정반대로 작은 집에 가면서 정말 필요한 것만 두고 살자고 생각하게 됐죠.

종후: 물건을 수집하면서 가장 큰 딜레마가 방이 물건으로 가득 차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고 물건이 사는 집이 되는 건데, 그걸 몇 번 경험하니 더 작은 집으로 가서 저장이 필요한 제품들은 창고에 보관하고, 집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우는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게 됐습니다.

보라: 확실히 필요한 것만 사게 돼서 좋은 것 같아요. 현재에 관심 있는 것들로 채워지게 되더라고요. 또 새로운 제품에 관심이 생기면 이전에 제품들은 창고에 저장하고, 계속  순환되는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큰 집에 있었을 때는 모든 게 다 들어가니까 집이 혼재되어 있었거든요. 이사 오기 전 집을 볼 때 큰집에 창고도 크게 딸린 집을 보게 되었는데, ‘와 여기 들어오면 물건도 다 넣을 수 있고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가지고 있는 제품을 다 넣고도 남을 공간인데, 이걸 채우려고 얼마나 더 물건들을 살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반대로 가게 된 것 같아요.

종후: ‘이 물건이 귀한 물건이고, 이걸 가져야만해’ 와 같은 것을 수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냥 바잉이죠. 좋은 수집은 물건을 잘 진열해 놓고 잘 즐기는 거예요.


이 공간처럼요?

종후: 아직 멀었습니다. 하하



Editor: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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