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세상을 바꾼 사과

2022-10-31

얼마나 바꿨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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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상을 바꾼 사과가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도, 뉴턴의 사과도 아닙니다. 모바일계의 혁명을 일으킨 애플도 아닙니다. 바로 20세기 미술계를 뒤바꾼 폴 세잔의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 입니다.


그러나 정작 세잔의 작품을 보면 당황스럽기 그지없죠. 부정확한 묘사와 구도, 유리병은 비뚤어져있으며 식탁 위의 테이블보는 허공에 뜬 듯 어색하고 책상의 높낮이까지 다릅니다.


심지어 작품 제목이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이지만 어느 것이 사과이고 복숭아인지, 정확히 구분되지도 않습니다. 요즘 미대 입시하는 친구들의 사과가 더 사과 같아 보일 정도로 못(?) 그린 이 작품. 대체 왜 세상을 바꾼 사과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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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 1905


세잔의 사과는 20세기 전반기 회화의 양대 산맥인 앙리 마티스와 피카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지금껏 보았던 다른 그림들과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꾼 사과'라는 칭호를 얻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살펴보면 그림 왼쪽에 보이는 접시와 사과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가운데 오렌지를 담은 그릇과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졌습니다. 즉, 이 그림은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개의 시점으로 그려진 것이죠.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아보면 사물이 달라 보이 듯, 세잔은 이 작품을 그릴 때 사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눈에 들어오는 서로 다른 모든 장면을 한 화면에 담기 위해 신중하고 성실하게 붓을 놀렸습니다. 그 결과 세잔의 사과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엄격히 지켜지던 원근법의 규율을 파괴하며 미술계의 반향을 일으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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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인상, 해돋이,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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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생트 빅투아르 산, 1885


또한 모네 식 인상주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였는데, 모네에게 자연이란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의해 매 순간 달리 보이는 것으로 찰나의 빛이 사물에 반사되는 순간에 띄는 빛을 포착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빛을 포착한다는 이유만으로 즉흥적인 붓질을 하다 보면, 형태가 파괴된다고 생각해 사물 본연의 색과 형태에 집중했습니다.


또한 형태의 본질이 도형임을 포착한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 등으로 도형화했습니다. 즉, 모든 사물의 형태에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기본 도형으로 본 것이죠. 이는 훗날 바실리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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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드니 - 세잔에게 바치는 경의 (1898-1900)


그가 떠난 다음 해, 세잔의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한 젊은 화가는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을 보고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젊은 화가의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 여러 시점을 담아낸 세잔의 정물은 피카소에게 입체주의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고, 마티스 또한 세잔의 다양한 색채에 영감을 받아 야수파를 완성시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세상을 바꿨음에도, 그가 생전에 존경받던 시기는 고작 1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나긴 무명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한 사과가 세상을 바꾸었죠.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은 사과 그림이 아니라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던 세잔의 꾸준함일지도 모릅니다.


Editor : 금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