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출신의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 hypebeast
오타쿠 출신의 예술가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무라카미 타카시. 은하철도 999를 보며 자라온 애니메이션 오타쿠 무라카미는 도쿄 예술대학 일본화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석박사 과정을 거친 그는 일본화과가 배출한 1호 박사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죠. 그러나 당시 일본의 순수 미술은 서양의 미술 관습이 상당히 혼합되어 있었고 무라카미는 진정한 일본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무라카미는 어릴 적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서브컬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일본다움(japanese-ness)의 확실한 원천이며, ‘전대미문의 새로움’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고유한 자산이라 여겼습니다.

© 구마사 야요이 특별전
그는 이를 통해서 일본 미술을 위한 개념 ‘슈퍼 플랫’을 만들어 냅니다. 고급 미술과 서브컬처, 예술과 상업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계로부터 외면받았던 오타쿠들의 문화를 중점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요. 그의 ‘슈퍼 플랫’은 일본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게 됩니다.
*슈퍼 플랫: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도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조.

© The Modern Art Museum Of Fort Worth
특히 그의 슈퍼 플랫 사조가 돋보이는 <히로폰>과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실물 크기의 대형 피규어로 제작되었는데요. 이 작품들은 다소 외설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오타쿠 문화의 가치와 일본 사회를 시사 풍자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뉴욕 경매 시장에서 158억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죠.

© kaikai kiki
카와이 문화 뒤에 앉은 패전의 역사
그의 작품은 귀여운 캐릭터와 다채로운 색감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이면에는 일본 사회가 경험했던 트라우마에 대해 조명해왔는데요. 일본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핵무기 공격을 받은 유일한 국가입니다. 무라카미는 이에 자신의 부모 세대와 지금까지도 사회에 만연해있는 원폭 투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어 왔죠.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슈퍼 플랫 플라워가 대표적인데요. 그는 웃는 꽃 캐릭터를 통해 일본의 패전과 원폭 투하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은 일본 국민을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 kaikai kiki

© MoMA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는 일본 사회가 경험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의 경제 불황 등 다양한 일본의 재앙들을 반영하며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해골은 삶과 죽음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탄탄보’와 자신의 페르소나인 ‘도브’를 기괴하게 표현하며 일본 국민들의 불안과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죠.

© kaikai kiki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기업론
무라카미 다카시는 예술가이자 성공한 사업가로도 유명합니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라는 칭호도 얻고 있죠. 그는 일반적인 예술가 답지 않게 ‘주요 고객군’을 선정하고 예술을 기업처럼 운영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슈퍼 플랫 사조처럼 고급예술과 하위 예술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대량 생산해서 대중들에게 판매하기도 했죠. 이후 그는 예술가로써 성공하기 위한 전략을 담은 <예술기업론>을 출판하여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 kaikai kiki X louis vuitton

현재 많은 브랜드들이 다양한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명품 브랜드와 예술가의 첫 콜라보레이션은 바로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비통의 협업이었습니다. 당시 루이비통은 이 협업으로 영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무라카미는 다시 한번 세계의 그의 이름과 예술성을 알릴 수 있었죠. 그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아티스트 빌리 아이리시, 칸예 웨스트 그리고 최근 뉴진스와의 협업으로 아직까지도 그의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Raphaël Martiq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 플랫 한 세계
무라카미 다카시는 밝고 귀여운 작품 이면에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해석과 비판의 여론이 나오고 있지만 성공한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이는데요. 앤디 워홀에 이은 21세기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예술세계가 기대됩니다.
*참고문헌
<무능 현실 전능 예술의 역설 : 오타쿠 문화와 무라카미 다카시로 본 일본> 김민수, 일본 비평, 2011
Editor: 혜성
오타쿠 출신의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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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출신의 예술가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무라카미 타카시. 은하철도 999를 보며 자라온 애니메이션 오타쿠 무라카미는 도쿄 예술대학 일본화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석박사 과정을 거친 그는 일본화과가 배출한 1호 박사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죠. 그러나 당시 일본의 순수 미술은 서양의 미술 관습이 상당히 혼합되어 있었고 무라카미는 진정한 일본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무라카미는 어릴 적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서브컬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일본다움(japanese-ness)의 확실한 원천이며, ‘전대미문의 새로움’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고유한 자산이라 여겼습니다.
© 구마사 야요이 특별전
그는 이를 통해서 일본 미술을 위한 개념 ‘슈퍼 플랫’을 만들어 냅니다. 고급 미술과 서브컬처, 예술과 상업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계로부터 외면받았던 오타쿠들의 문화를 중점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요. 그의 ‘슈퍼 플랫’은 일본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게 됩니다.
*슈퍼 플랫: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도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조.
© The Modern Art Museum Of Fort Worth
특히 그의 슈퍼 플랫 사조가 돋보이는 <히로폰>과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실물 크기의 대형 피규어로 제작되었는데요. 이 작품들은 다소 외설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오타쿠 문화의 가치와 일본 사회를 시사 풍자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뉴욕 경매 시장에서 158억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죠.
© kaikai kiki
카와이 문화 뒤에 앉은 패전의 역사
그의 작품은 귀여운 캐릭터와 다채로운 색감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이면에는 일본 사회가 경험했던 트라우마에 대해 조명해왔는데요. 일본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핵무기 공격을 받은 유일한 국가입니다. 무라카미는 이에 자신의 부모 세대와 지금까지도 사회에 만연해있는 원폭 투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어 왔죠.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슈퍼 플랫 플라워가 대표적인데요. 그는 웃는 꽃 캐릭터를 통해 일본의 패전과 원폭 투하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은 일본 국민을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 kaikai kiki
© MoMA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는 일본 사회가 경험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의 경제 불황 등 다양한 일본의 재앙들을 반영하며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해골은 삶과 죽음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탄탄보’와 자신의 페르소나인 ‘도브’를 기괴하게 표현하며 일본 국민들의 불안과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죠.
© kaikai kiki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기업론
무라카미 다카시는 예술가이자 성공한 사업가로도 유명합니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라는 칭호도 얻고 있죠. 그는 일반적인 예술가 답지 않게 ‘주요 고객군’을 선정하고 예술을 기업처럼 운영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슈퍼 플랫 사조처럼 고급예술과 하위 예술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대량 생산해서 대중들에게 판매하기도 했죠. 이후 그는 예술가로써 성공하기 위한 전략을 담은 <예술기업론>을 출판하여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 kaikai kiki X louis vuitton
© ADOR
현재 많은 브랜드들이 다양한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명품 브랜드와 예술가의 첫 콜라보레이션은 바로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비통의 협업이었습니다. 당시 루이비통은 이 협업으로 영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무라카미는 다시 한번 세계의 그의 이름과 예술성을 알릴 수 있었죠. 그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아티스트 빌리 아이리시, 칸예 웨스트 그리고 최근 뉴진스와의 협업으로 아직까지도 그의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Raphaël Martiq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 플랫 한 세계
무라카미 다카시는 밝고 귀여운 작품 이면에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해석과 비판의 여론이 나오고 있지만 성공한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이는데요. 앤디 워홀에 이은 21세기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예술세계가 기대됩니다.
*참고문헌
<무능 현실 전능 예술의 역설 : 오타쿠 문화와 무라카미 다카시로 본 일본> 김민수, 일본 비평, 2011
Editor: 혜성